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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21. 2023

미역국에 부쳐

나물이를 처음 가졌을 때, 기쁨보단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우리의 계획보다 아주 빨리 나물이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도 남편도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더 그랬다. 게다가 기형아 검사에서 나물이 수치가 꽤 높았다. 그 소식을 듣고 밤새 잠도 못 자고 펑펑 울기만 했다. 병원에선 양수검사를 이야기했지만, 우린 마음을 다잡고 양수검사를 하지 않은 채, 대학 병원으로 병원만 옮겼다.


   하루하루, 배가 불러오면 올수록 우리의 바람은 하나였다. 그저 나물이가 건강하게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건강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이니 귀하게 키우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럼에도 우린 나물이가 건강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예정일이 지나도 나물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유도 분만을 통해 나물이가 세상에 나왔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오후 5시 30분쯤. 예정일이 지나서 정기검진을 위해 아침 9시쯤 병원에 가서 유도제를 맞고 자연분만을 통해 나물이를 낳은 시간이다.


   그 이후로도 늘 우리의 바람은 나물이의 건강이었다. 그래서 태어난 지, 채 백일도 되지 않은 나물이가 몸무게 9kg을 찍으며 슈퍼베이비가 되었을지라도 우린 감사했다. 건강한 아이의 모습에 말이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나물이의 생일인 오늘, 저녁 일정이 있는 아빠가 일찌감치 사 온 선물과 조각 케이크로 아침부터 생일 축하를 해 주었다. 불량 엄마인 나조차도 오늘은 미역국과 불고기를 만들어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나물이를 위한 축복 기도를 하고 식사하는데, 나물이가 그런다. 어제 수학 단원 평가 시험 본 결과가 나왔다고. 20문제 중의 15문제나 맞았단다. 내 표정이 좋지 않으니 나물이가 그런다. 이번에 20문제 다 맞은 친구는 1명밖에 없다고, 문제가 어려웠다고 말이다.


   폭풍 같은 잔소리가 쏟아진다. 엄마랑 2학기에는 매일 수학과 사회 문제집을 풀기로 했는데 왜 풀지 않는 것인지, 15개나 맞은 게 아니라, 5개나 틀린 거라고. 15개만 맞은 거라고. 다다다다 쏟아내다가 보니 눈앞에 미역국이 보인다.


   나물이를 낳고 한 달 내내 먹었던 그 미역국이, 미역국을 먹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다시 눈앞에 미역국을 본다. 나물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물이를 낳고 나서도, 그 싫어하는 미역국을 꾸역꾸역 먹으면서도 나의 바람은 늘 한 가지였던 사실이 미역국에 비친다. 그러게. 나는 그저 나물이의 건강만을 바라던 엄마였는데, 어느 사이엔가 생일상 앞에서도 잔소리를 쏟아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 후, 나물이에게 미역국을 더 먹겠느냐고 묻는다. 나물이가 미역국을 더 달란다. 미역국을 떠주며 다시 나물이의 건강만을 바라던 그 엄마로 돌아가리라 마음먹는다. 물론 이 글을 쓰자마자, 어쩌면 글을 맺기도 전에 또 다른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미역국을 떠올려야겠다.


   우리는 그래서 생일마다 미역국을 먹는지도 모르겠다. 끓이는 손길은 아이의 건강만을 바라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먹는 사람은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랑을 느끼기 위해. 어느 순간, 시간이 흘러 끓여 주는 사람이 사라지고, 받던 손길이 끓이는 손길이 될지라도, 우리는 미역국을 앞에 놓고 바라던 그 마음들을 잊지 말자고, 꼭 그렇게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는지도 모르겠다.


   나물아, 생일 축하해. 너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는 오늘이구나. 나물이도 늘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랄게. 나물이가 언제나 늘 주님 안에서 영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기를 엄마는 언제나 기도할게. 사랑하고 축복해. 나물아^^”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열일곱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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