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이야기 1
“도시락과 개인 물병을 가져오세요.”
“선생님, 물 있어요?”
“개인이 마실 물을 물병에 담아 오세요. 선생님처럼 이렇게 텀블러에 담아 오세요~.”
“아니요, 뜨거운 물 있어요? 라면 먹어요. 물 있어요?”
“뜨거운 물은 없어요. 라면은 먹을 수 없어요.”
“도시락 가져와요. 물 있어요?”
“네? 도시락을 가져오세요. 개인이 마실 물을 가져오세요.”
어쩐지 대화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다. 한국어 학급이나 학교에서 외부로 체험학습을 갈 때, 도시락을 가져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한국어 학급 학생들에게 안내하면, 아이들은 자꾸 뜨거운 물이 있냐고 물었다. 왜 그러지 싶어 ‘한국어-외국어 학습 사전’을 통해 ‘도시락’을 검색하여 안내해도 아이들 얼굴에서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도시락: 2. еда в дорогу; еда для пикника и пр.; тормозок
밖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작은 그릇에 담아 온 음식.
Еда, приготовленная для употребления вне помещения, на улице.‘
그 의문이 풀린 건 최근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할 때, 학교 급식을 먹지 않고, 샐러드 도시락이나 간편식을 챙겨가서 점심을 먹곤 한다. 그날은 비도 오고, 미처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쟁여두었던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날의 컵라면이 바로 ‘팔도 도시락 라면’.
같이 식사하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출신 다문화 언어 강사 선생님께서 도시락 라면을 보더니 그러신다. 그 나라에서는 ‘도시락’이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무조건 이 라면을 생각한다고. 그래서 설명할 때, 아주 잘 이야기해야 한단다. 가정통신문 번역을 하실 때도 이 부분을 엄청 신경 쓰신다고 한다.
아, 어쩐지. 그래서 뜨거운 물이 있냐고 물었구나. 자꾸 ‘도시락’이라고 말하니, 아이들이 ‘Доширак’(도시락 라면, 혹은 러시아어에서는 컵라면 전체를 이르기도 한단다. - 출처 나무위키)이라고 알아들었나 보다. 우리의 대화가 왜 그렇게 자꾸 도돌이표였던지 이제야 깨닫게 됐다.
어쨌든, 다문화 언어 강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그 나라 도시락 라면은 맛도 다양하고, 양도 좀 더 많다고 한다. 한국 도시락 라면과 맛이 조금 다르다나?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갔다가 식료품 가게에서 스치듯 본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에게 체험학습 준비물을 안내할 때, 되도록 ‘도시락’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급식이 없다, 점심을 주지 않으니 먹을 것을 갖고 오라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최근엔 주로 점심값을 가져오라고 하는 편이다. 근처 식당에서 각자 원하는 메뉴를 사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여전히 ‘도시락’을 피할 순 없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표준한국어 의사소통 2권 3단원에 체험학습과 관련하여 ‘도시락’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그땐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지혜롭게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도시락과 ‘Доширак’. 소리는 비슷한데 뜻이 달랐다. 아이들의 겉모습은 꼭 한국의 중학생들인데, 참 낯설고 다르다. 그래서 우리의 수업은 늘 그런가 보다. 나는 ‘도시락’을 말하지만, 그들은 ‘Доширак’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나날들. 결국 한 곳에서 나왔음에도 달라져 버린 이 현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처음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엔 언제나 누군가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것이 도시락이었을 게다. 그러니 도시락 속에 마음을 담듯, 수업에 마음을 싣는다면, 언젠가 아이들과 이어지지 않을까.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사랑으로 교재를 안치고, 정성으로 학습지를 짓는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스물일곱번째
#Cre쎈조
#어제_먹은_점보도시락이_잊히지_않아_쓰고뱉다
#아무래도_췌장어디쯤에서_꿈틀거리며_꽈리를_틀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