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질문

20200909

by 여느진

Q. 느린 우체통을 통해 1년 전 내가 나에게 쓴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요?


A.

작년 12월 31일에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썼었다. 그 해에 내가 한 일들을 나열하기도 했고, 위로하기도 했고, 응원하기도 했다. 마지막은 나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원래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읽으려 썼던 편지지만, 두어 달 전쯤에 괜히 읽고 싶어 져서 꺼내봤다. 그리고 괜히 눈물 날 뻔했다.


작년의 나는 새로운 일도 많았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내 20대에 가장 어른으로 확 발돋움한 때를 고르라 하면 2019년의 나를 꼽을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첫 직장에 들어가 6개월 만에 도망치듯 이직했다. 나를 갈아 넣었고, 극단적인 말이 입에서 습관처럼 나왔고, 영원할 것 같던 관계를 잃고,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작년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니 야식으로 초밥을 먹었고, 필름 카메라를 사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었고, 이직한 직장에서 우연하게 만난 귀여운 낙서를 담아놨다. 아마 그 날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은 여전히 새로운 직장에 다니고 있니? 당시에 옆에 있던 사람이 아직도 옆에 있니? 그래서 조금 더 행복해졌니? 일 거다. 그리고 변함없이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지.


대답하자면 응, 다니고 있어. 아니, 없어. 행복한 건 모르겠지만 또 새로운 일을 잔뜩 겪었어. 그리고 나도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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