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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동그라미 뭉개기

오늘의 간식_타코야키

by 여느진

2020년 11월 26일, 오후 8시 15분


누구나 현금으로 천 원짜리 3장쯤 품속에 품고 다녀야 하는 시기가 왔다. 호떡, 붕어빵, 타코야키. 겨울 간식 삼대장들을 먹고 싶을 때 바로 먹기 위한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 나는 늘 현금 만원 정도는 품고 다니는 편이다. 간식을 염두에 둔 건 아니고, 복권을 사기 위한 만원이다. 일이 안 풀리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복권 당첨되려는 게 분명해! 하고 복권을 산다. 요즘은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 마음만 먹지만.


오늘도 어쩐지 복권이 사고 싶은 날이었다.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왜인지 모르게. 하지만 지갑엔 현금이 없었다. 버스에 오르며 그럼 타코야키를 사 먹자, 다짐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같은 느낌의 마지막 신호등 뒤편엔 타코야키 집이 있다. 계좌이체도 할 수 있는 곳이라 현금이 없어도 아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치즈맛과 오리지널 맛으로 반반, 가다랑어포 많이 넣어주세요 말하고 봉투를 달랑이며 집에 가는 길이 가벼웠다. 기다림을 수반하는 복권보다 더 확실하게 기대감을 증폭시켜주는 방법이다.


집에 도착해 제대로 밥을 먹기 전에 엄마와 티브이를 보며 타코야키를 한 알씩 없앴다. 항상 다 익은 게 맞나 의심하게 되는 물컹한 속에 씹히는 쫄깃한 문어 조각. 달콤한 소스가 잔뜩 뿌려져 있고, 가다랑어포의 짭짤함이 더해져 한 알을 먹으면 또 금방 다른 한 알을 밀어 넣을 준비를 마치게 된다. 8알은 너무 적고, 30알은 너무 많아 늘 15알을 먹게 된다. 요구르트처럼 하나는 감질나고, 세 개는 과한 그런 간식.


동그라미를 열심히 씹어댈수록 생각이 여러 갈래로 조각난다. 동그란 모양을 삼키다 보면 모난 하루의 모서리가 조금은 무뎌질까. 어쩌면 내가 사는 하루는 그렇게 날카롭지 않은데, 나 자신이 너무 날 서있어서 주변에 흠을 만드는 건 아닐까. 지금은 그저 동그라미를 삼키고, 또 삼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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