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한 끼_매콤 크림 파스타 치킨과 망고 맥주
2019년 10월 9일, 오후 9시 36분
바깥공기를 맞는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붉다. 손끝은 살짝 저릿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는 조금 과한가 고민했던 외투의 두께가 자연스러워진 오늘, 비로소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자연스럽게 주머니로 들어가려는 손을 억지로 꺼내 자료를 보고 핸드폰 키패드를 누르는 지금. 계절의 변화가 손에 그대로 와 닿는다. 얼마 전까지 노란색을 꼼꼼하게 덮고 있던 거리는 텅 비었다. 역시 겨울은 텅 빈 풍경을 동반하는 계절.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더 크게 번지는 발자국 소리가 듣기 싫어 이어폰을 귀에 서둘러 꽂았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건 결국 또 생각. 새로운 핸드폰이 내일 도착하기로 한 김에, 2년의 시간을 나와 보낸 이 핸드폰에 담긴 기억들을 둘러본다. 그러다 발견한 내가 좋아하던 홍대의 술집.
시끄러운 번화가 속에서 이질적인 조용함을 자랑하던 이 술집은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곳. 그 후 내가 가르치던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데려가거나,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또 본인의 주변인을 데리고 간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어쩐지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이 곳에서 자주 먹는 안주는 파스타 치킨. 원래는 소스와 치킨만 나오는데, 면추가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맛있는 파스타와 치킨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진한 과일향을 자랑하는 망고 맥주를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전골이나 다른 안주들도 맛있지만, 어쩐지 이 치킨은 이 곳의 특별함을 배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망고향이 나는 음식을 즐기는 편도 아닌데, 이 곳에선 꼭 망고 맥주를 고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흔한 맛인데, 특유의 분위기와 안주가 나오기 전에 집어먹는 새우맛 과자와 시끄러운 바깥과 다른 조용함이 특별한 맛으로 바뀌었다. 내가 데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애정이 기반이 된 관계였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갈 수 없지만.
얼마 전 친한 동생이 가게가 아예 없어졌더라는 얘기를 전했다.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소중하게 간직하던 장소가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다니. 마지막으로 향한 지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라져 버린 아지트가 야속하고 아쉽다.
그 1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같이 갔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 자신도. 그 장소에서 음식을 찍던 핸드폰도 이제 곧 달라지니까. 지금 귀에서 들리는 노래도 그맘때쯤 즐겨 듣던 노래. 그때 그 가수에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달라졌듯이 1년의 시간이 참 많은 것을 훑고 갔음이 여실하다. 그 손길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장소를 그려본다.
오늘 내가 나를 담았던 장소들도 내년 이맘때에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지. 내 마음속에만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수도 있을 테고. 새로운 핸드폰을 기다리며 사라진 장소의 기억을 더듬는 모순적인 지금, 그때 마셨던 망고 맥주를 들이켜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