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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인내의 맛

오늘의 한 끼_사골국과 파김치, 그리고 스팸 구이

by 여느진

2020년 11월 28일, 오후 9시 50분


새벽에 새로운 핸드폰이 도착해 잠을 설쳤다. 이것저것 옮기고, 필름을 붙이고 하는 등 사용할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새로움을 일상으로 넣는 설렘의 시간은 피곤함도 기꺼이 소화해냈다.


손때 묻은 기계가 품고 있던 기억을 이사시키는 동안, 부엌에선 사골들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일어나서 온 집 안에 가득한 훈훈함과 오래도록 끓는 소리를 마주하고 나서야 사골들이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사골들의 인내로 버틴 시간이 식탁에 놓여있었다. 알싸한 파김치와 짭조름한 스팸과 함께 조금은 심심하고 구수한 국물에 밥을 말아 목에 넘겼다. 일주일 내내 이 시간을 그리며 버텼는데, 어제의 뼈들도 이 순간을 생각하며 기다렸을까. 바뀐 제 모습이 마음에 들까.


로켓처럼 빠른 배송 덕분에 기다림의 시간은 짧았다. 기다림은 다양한 감정을 수반하는데 이번 기다림은 그 감정을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다. 고민의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짧은 새로움과의 조우는 설렘이 가득하긴 했지만, 그만큼 빠르게 열기가 식었다. 꽤 오랫동안 뜨끈했던 사골국물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가수가 오늘 큰 상을 받았다. 조금은 복잡한 체제 탓에 당사자들도, 팬들도 때로 어리둥절하고 어렵기도 했던 그런 시간들을 모두 이겨내고 받은 상. 수험생 시절 수능이 끝난 후를 그리며 버텼던 시간들, 학부시절 처음으로 맛 본 배신과 헛된 소문의 무서움을 느꼈던 시간들, 일하며 극점의 스트레스를 느낄 때 주말을 떠올리고 간신히 버텼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같이 떠올랐다. 그 수많은 인내들이 우려낸 국물이 마냥 맛있지는 않았지만, 의미 없지도 않았다. 그때 흘린 눈물마저 향신료가 되었으니까.


방에 들어오는 외풍 탓에 몸을 살짝 웅크리고 타자를 두드리는 지금, 꼭 겨울잠을 자기 위해 웅크리는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또 어떤 인내를 하게 될까. 변화를 준비하는 지금, 나는 또 어떤 국물을 우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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