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조용한 하늘

오늘의 눈 맞춤

by 여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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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3일, 오후 7시 47분


밤으로 향해가는 시간, 평소보다 이른 퇴근. 봄이라기엔 꽤 쌀쌀한 바람. 계절이 따스함을 입으러 가는 여정이 꽤 험난하다. 저녁인데도 밤 같은 오늘. 봄인데도 겨울 같은 오늘. 나의 오늘.


늘 새벽에야 잠드는 나. 가끔 퇴근길이 꼭 조용한 새벽을 향해 걸어가는 길 같다고 생각했다. 직업의 특성상 늘 밤에 끝나고, 그때쯤 거리는 서서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풍경이고, 실제로 집에 도착했을 때 하는 일은 결국 새벽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오늘처럼 조금 이른 퇴근길의 풍경에 가득한 분주함이 조금 낯설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이전에도 비슷한 풍광을 봤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때는 우연하게 봤지만 이번에는 보고 싶어서 봤다. 소란함 뒤에 조용히 숨어있는 하늘이 좋았다. 사람들의 사는 소리와 좋아하는 노래가 섞인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들으며 즐겼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초록빛이 돋아나기 전까지 이 나무의 잎새는 하늘이겠지.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을 나무가 꽤 부럽기도 했다. 당장 장바구니에서 무얼 덜어내고 담아야 할지 결정 내리지 못하는 나니까, 매번 멋진 옷이 자동으로 걸쳐진다는 건 획기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노래가 두 번 바뀌고, 버스가 왔다. 차에 오르자마자 하늘을 보며 했던 생각은 모두 희미해진다. 오늘은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 집에 도착해서 이 핑계로 마늘이 가득한 치킨과 떡볶이를 먹어준다. 생각해보면 나도 매번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조금 더 내려간 앞머리, 매일 먹는 저녁 메뉴, 버스 안에서 보는 화면 같은 그런 것들.


내일은 뭐가 바뀔지에 대한 약간의 기대와 함께, 오늘도 무사히, 소란하고 조용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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