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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r 29. 2021

숨은 그림자 찾기

오늘의눈 맞춤

2021년 3월 28일, 오후 10시 7분


 다른 지역을 오가는 일은 다른 시공간을 뛰어넘는 것만 같다. 새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구경하다가, 어두컴컴한 먹지 같은 하늘을 보는 일은 내가 지금 같은 나라에 같은 날 있는 게 맞나 의심하게 만든다. 방금까지 내 현실이었던 장면들은 사실 내가 꾼 꿈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도 품게 만든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큼직한 가방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우산을 꺼내야 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섞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은 바닥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내가 쓴 우산을 따라 쓰는 그림자.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다시 숨기를 반복한다. 그림자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헷갈리는 걸까.


 집 앞에 다다랐을 즈음, 앞에 늘어진 그림자가 새삼 커 보였다. 주변이 어둑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 조차 모를 모습으로. 교묘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그림자에 이미 사라진 맑은 여행지의 풍경을 떠올렸다. 분명히 존재했으나 사라진. 내가 굳이 꺼내어 기억하지 않으면 어쩌면 평생 사라질 수도 있는, 이미 과거가 되어 지나가버린 나의 시간들이.


 내가 다시 꺼내지 못하고 지난 순간들은, 풍경들은, 시간들은 몇이나 있었을까. 그림자의 길이를 가늠하며 공연히 던져보는 질문. 여전히 비는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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