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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25. 2021

누군가의 얼굴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24일, 오후 2시 32분


 누군가의 가려지지 않은 하관을 길거리에서 본 적이 아득하다. 눈만 마주하는 것이 일상이 된 조금 슬픈 요즘. 그러니 내가 이 연한 회색빛 벽 위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뜬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맨얼굴을 보고서 발걸음을 멈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오늘 침대에서 눈 뜨고 보낸 시간의 절반은 충동으로 이뤄졌다. 새로 시킨 옷이 외출 직전에 도착해 그 옷을 입고 나왔다. 살짝 바스락 거리는 재질의 옷이 걸을 때마다 내는 소리가 오늘의 내 주제곡이었다.


 우연하게 다니고 있는 학원 바로 옆에 좋아하는 가수 관련 이벤트를 하는 카페가 있단 걸 알았고, 이게 계기가 되어 귀가하는 경로만 아는 새로운 동네를 탐방하게 됐다. 그러다 벽 속에 그려진 어떤 얼굴을 만나게 됐고, 예쁜 하늘을 여럿 봤고, 애정을 기반으로 늘 해보고 싶은데 고민만 하던 일을 위한 소비를 했다.


 충동적으로 한 소비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차 싶기도 하고, 후회가 남는 부분도 많지만 충동이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일이 다반 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일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순간들이 많다.


 오늘 봤던 얼굴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충동이 만나게 해 준 누군가의 얼굴이. 아직도 궁금하다. 과연 그는 눈을 감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뜨고 있던 것일까. 이 날씨의 공기를 완전하게 느끼고 있던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하다.


 만난 것이 너무 많아 몸과 눈이 무겁다.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졸음에 내려오는 눈이 반갑기도 하다. 문득 그의 얼굴이 지금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반쯤 감은 이 모습이. 그의 시간은 늘 편안한 상태에 머물러 있구나. 나는 계속 흐르니까 금방 이 표정이 지워지겠지.


 나도 누군가의 얼굴. 그 순간에 내 표정은, 좀 더 편안하게 기억되면 좋겠다. 이왕이면 입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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