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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06. 2021

작은봄 손님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5일, 오후 11시 1분


 과제를 하다가 맥주를 마셨다. 어른이 되면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되어보니 평생이 숙제다. 차라리 학교에 다닐 때처럼 숙제의 목적이 명확했으면 나을 텐데, 시간낭비가 될지, 경험치가 될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목적을 두고 하려니 더 하기 싫다. 책임 소재가 오롯이 나라는 점도 게으름의 한 요소가 된다. 비록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원망할지 몰라도.


 5월이 되고 첫 외출을 했다. 아주 짧긴 했지만. 엄마와 맥주를 더 사러 가는 길에 주차된 차 뒤에 숨겨진 작은 꽃들을 봤다. 얼마 전까진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갇혀 있다고 느낀 시간에도 세상은 흐르고 있었다. 엄마는 옆에 접시꽃 잎새를 보고 곧 여기에 접시꽃도 활짝 피겠다고 한담을 건넸다. 추워서 봄이 다른 곳에 갔나 했더니 우리 집 앞에 와있었다.


 맥주를 잔뜩 넣은 봉투를 엄마와 한쪽씩 나눠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 다시 꽃을 살금 봤다. 다음에 다시 볼 땐 그 자리에 없을지 모를 봄 손님. 과제를 이어할 기운을 조금 얻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봄 손님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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