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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이런 날도 있을 법해

오늘의 한 끼_초밥과 물회

by 여느진

2020년 9월 15일, 오후 7시 58분


이상하리만치 졸음과 피로가 쏟아지는 날.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을 들어 사진에 담았을 푸른 하늘과 포실하게 피어오른 구름도 외면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 소식이 있었는데도 힘이 나지 않았다. 보상으로 꼭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출근하면서부터 다짐했다.


일할 때는 역시나 기운이 쑥쑥 빠졌다. 유독 오늘따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무거운 몸, 더운 듯 쌀쌀한 알 수 없는 날씨, 온통 신경 쓸 것 투성인 그런 날. 특별히 짜증 나는 일은 없지만 은은하게 기분이 나빴다.


엄마의 추천으로 초밥과 물회를 먹었다. 초밥을 먹을 땐 꼭 모둠초밥으로 시킨다. 따로따로 시키기엔 내 결정력이 단호하지 못할뿐더러 초밥의 종류가 너무 많다. 이렇게 시키고 나면 대체로 만족스럽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생선의 쫀득한 식감과 입 안을 굴러다니는 밥알들. 시원한 물회의 국물과 새콤 매콤한 양념을 머금은 회의 만남. 사실 엄마가 물회의 국물을 붓다가 간장에도 쏟아버려 초밥을 간장에 찍어먹지 못해 짜증이 순간 일었다가, 초밥 하나를 입에 넣자마자 화가 사르륵 풀렸다. 정말 최고의 저녁 메뉴였다.


물회도, 초밥도 다양한 종류가 섞여있어서 씹다 보면 맛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맛있지도, 끌리지도 않은 애매하게 그저 그런 것이 껴있다. 이런 초밥이나 회를 먹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바로 먹어 그 잔재를 지워버린다. 그저 그런 초밥은 맛있는 초밥을 위한 발판이 된다.


오늘 하루도 내 많은 날 중에 껴있던 애매하게 그저 그런 초밥 같은 날이었겠지. 모둠 초밥에 그런 초밥이 있을 법한 것처럼, 오늘 같은 하루도 있을 법하지. 애매하게 그저 그렇지만, 그래도 다 지나고 보면 나쁘지 않은 그런 날. 내일은 더 맛있는 하루가 되려는 발판이 되어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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