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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18. 2021

비가 남긴 우주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17일, 오후 5시 19분


 일기예보엔 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었는데, 내가 눈 뜬 오후에 밖에선 빗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간단하게 밥을 먹을 때 열어둔 창 밖이 꽤 상쾌해서 어제와 다른 하루가 또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


 오늘은 물품 교환을 위해 잠깐 외출해야 했다. 사실 귀찮았는데 애정의 힘으로 밖에 나왔다. 날씨는 정말 좋았고, 귀찮음에 굴복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시간들을 만났다. 특히나 비가 내려준 우주를.


 지하철역으로 조금은 급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비가 만들어둔 물웅덩이에 하늘이 비치는 걸 발견했다. 비를 머금었던 구름이 가벼워지고, 성기게 얽혀 떠다니는 푸른빛이 땅의 불순물 섞인 회색과 만나면 우주와 같은 모습이 된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박힌 점들이 별처럼 바뀌고, 구름이 성운으로 보인다. 옆에 건조한 도로는 여전히 차가 굴러갈 뿐이고, 위의 하늘은 아래와는 상관 없이 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새로운 세상의 탄생은 이토록 기묘하다.


 애정을 기반으로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고, 사소한 나쁜 일과 사소한 좋은 일이 섞였다. 결국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해외 유명 연예인들이 부른 본인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듯한 이별과 사랑 노래를 듣고. 누구나 그렇듯 이런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을 잠깐 떠올렸다가. 하루의 탄생도 참 기묘하다.


 일찍 일어나겠다 다짐하지만, 내일도 난 늦잠을 자겠지. 또 약간의 귀찮음을 이기고 일상을 살테고, 남들이 한창 하루를 시작할 때 뒤늦게 일어나 또 다른 시간을 살겠지.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생기고, 사라지고, 또 생기겠지. 늘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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