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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20. 2021

화면 속 바다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19일


 나는 언제나 내가 반쯤 주변 사람들 옆으로 새어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직업, 하고 싶은 일, 취미, 좋아하는 것, 생활 방식 등등. 아주 여러 가지의 것들. 물론 내 직업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있고, 비슷한 결로 내 취향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있고, 나와 같은 생활 방식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다. 사실 내 조각조각과 같은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이 조각들을 전부 합친 사람은 나뿐이니까.


 하루 종일 문서 작업 창을 켜 뒀다. 계속 그 앞에 앉아 있던 것은 아니지만, 종일 정신은 여기에 묶여 있었다. 제일 많이 본 것도 하얀 배경에 깜빡이는 커서. 꼭 알파벳 'I' 같아서, 내가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한계에 부딪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화면 안을 헤엄쳤다.


 어쨌든 시간 내에 끝내지 못했고, 다 채워지지 못하고 새하얗게 남아있는 여백은 아직도 그대로다. 엄마와 집 앞에 새로 생긴 파스타집에 가보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물론 그 덕분에 맛있는 닭볶음탕을 먹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순간에 나는 다시금 내가 이쪽 계열에 재능이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새삼. 해보고 싶고,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없지만. 그냥 내가 또다시 옆으로 새어 나와있구나 생각하고 만다. 나를 갉아먹어봤자 마음속 고랑만 깊어질 뿐이다. 그냥 흐르는 길이 다르구나, 나를 위로하고 끝낸다.


 결국은 다 채울 나. 그 안에서 헤엄치는 표정이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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