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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회포의 매운맛

오늘의 한 끼_매운갈비찜

by 여느진

2020년 9월 25일, 오후 8시 15분

사람 간의 인연은 예측하기 어렵다.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사람이 순식간에 남남이 되기도 하고, 스쳐 지나갈 것 같던 사람이 오래도록 옆에 머물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고, 그래서 지금 옆에 있는 순간이 소중하다.

오늘 아주아주 오랜만에 약속을 잡았다. 복수전공을 하던 때에 만난 타과 언니. 조별과제를 통해 우연하게 만났지만 워낙 사랑이 많은 언니 덕에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계속 미뤄진 약속이 몇 개월 만에 현실이 되었다.

원래는 곱창을 먹으려 했으나 가려던 가게가 문 닫고 그 자리에 매운 갈비찜 집이 생겼다. 둘이 고민하다 이건 매운 갈비찜을 먹으라는 계시다, 운명이다라며 들어갔다.

서로를 만나지 않은 동안 쌓인 이야기는 정말 산더미 같았다. 갈비찜의 국물이 모두 졸아 고기가 약간 탈 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불같았다. 헐, 대박, 정신 못 차리게 충격적인 근황의 매운맛의 연속이었다.

몇 살 더 어린 동생을 위해 주먹밥으로 눈사람을 만들어준 언니의 애정 위에 부드럽게 으깨지는 매운 양념을 잔뜩 머금은 살코기를 올려 먹는다. 다 졸아 없어진 양념에 푹 절여진 콩나물과 파를 올려서 또 한 입 먹는다. 입 안에 남은 모든 맛을 앗아가는 소주 한 잔은 덤. 소주병이 비워질수록, 냄비 안 고기가 줄어들수록 입에서 씁하-하는 소리는 늘어나고 서로의 빈 시간이 공유된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 정확히 기약할 수는 없어도, 얼얼해진 입 안에 남은 붉은 기만큼 오늘의 기억이 오래 새겨질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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