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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주말 숙취 즐기기

오늘의 한 끼 : 닭볶음탕

by 여느진

2020년 9월 27일, 오후 8시 19분


새벽에 난데없이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이미 낮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신 상태였고, 더 카페인이 몸에 들어가면 분명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늘 이성보단 본능의 힘이 센 사람이었고, 커피를 마셨고, 쿵쾅대는 심장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 결국 아침에 잠의 숙취를 가득 안고 눈떠야 했다. 어제는 술의 잔재를, 오늘은 카페인의 잔재를. 이번 주말은 숙취와 함께 하는구나 싶었다.


어제 먹고 남은 김치찌개와 반찬들을 나눠먹으며 엄마가 오늘 파스타 해 먹을 거냐 물어왔다. 사실 오늘 새벽에 내가 호기롭게 요리에 도전해보겠다 외치며 주문한 파스타 재료들이 한 꾸러미 도착했고, 밥을 먹기 직전에 그 짐들을 정리했다. 내 생각보다 더 크고 더 작고. 재료를 풀며 음, 쉽지 않겠군 생각했다. 엄마에게 잘 모르겠다고 하니 그럼 저녁에 닭을 사 오겠다는 답이 왔다. 속으로 아싸 하고 춤췄다. 저녁 메뉴가 뭔지 알 것 같아서.


내가 엄마에게 많은 세상을 공유하고 싶은 것처럼, 엄마도 내게 많은 맛의 세계를 보여줘 왔다. 내 음식 기호의 많은 부분은 엄마가 최초로 만들어준 기억에서 발전해온 것이고, 닭볶음탕도 그중 하나다. 지금은 술안주로 더 익숙해졌지만, 내 최초의 닭볶음탕은 엄마의 요리였을 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닭볶음탕 스타일도 엄마의 요리법이고.


내가 좋아하는 감자와 양파가 잔뜩 들어간, 퍽퍽살이 아주 많은 닭볶음탕. 조금은 맑은 국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찬 재료들. 중간중간 단맛 나는 당근이 섞여있는. 엄마가 내게 보여준 닭볶음탕은 이런 모습이다. 늘 그렇듯 감자를 먼저 건져 올려 앞접시에 옮겨 으깨고, 그 위에 푹 절어 흐물거리는 양파를 잔뜩 올린다. 살코기를 숟가락으로 대충 발라내고 하얀 쌀밥에 섞는다. 한 입 넣자마자 맥주를 안 꺼내올 수 없었다. 매콤 짭조름한 닭볶음탕과 쌀밥을 한 입씩 먹고, 탄산이 강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숙취가 가득한 주말에 또 다른 음주를 끼얹는다. 지독한 숙취의 연속. 닭볶음탕을 한 그릇 더 담아오며 이 숙취를 조금 더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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