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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그냥 하는 거야

오늘의 한 끼_감자채 볶음

by 여느진

2020년 10월 7일, 오전 11시 44분


엄마의 휴직이 길어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엄마와 나의 일상 시계가 맞는 일이 잦아졌다. 그중 하나가 내가 출근하기 전. 엄마의 수고스러움이 더해져 귀찮아 영양제와 커피만 대충 삼키고 나서던 내가 든든하게 챙겨 먹고 나가는 데에 익숙해졌다. 예전보다 타의로 앞당겨진 기상시간에 눈이 잘 뜨이지 않고 식사시간은 더 느릿해졌지만, 늘 혼자 있던 시간에 혼자 있지 않다는 자체로 참 고마운 시간이다. 날벼락같은 불행이 가져다준 작은 행복.


오늘 나를 밥상에서 반긴 것은 감자채 볶음. 감자와 양파를 채 썰어 볶아낸 이 반찬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 감자의 퍽퍽하면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식감에 푹 빠져있는 난 감자채 볶음을 밥처럼 퍼먹기도 했다. 오늘도 그릇에 수북하게 쌓아 올려져 있는 감자 조각들은 이런 나를 위한 엄마의 애정이겠지.


파스타를 만들어보며 내가 깨달은 건 채 써는 일이 생각보다 귀찮다는 것. 잘게 썰린 감자 더미를 입 안으로 가져가며 아침에 감자와 양파를 하나하나 썰었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늦은 시간에 잠든 엄마를 알고 있는데. 엄마가 출근하던 때에 나는 대게 잠에 빠져있었는데. 엄마 역시 휴직 후 나처럼 새벽녘에야 잠드는 일이 잦아졌으니 매번 먼저 일어나 상을 내어주는 일이 피곤할 법도 한데. 정작 집을 나설 때는 급박하게 나가느라 제대로 고맙단 말도 하지 못한 것이 뒤늦게 생각난다.


피로에 다시금 절여지기 시작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돌아온 집. 치맥을 위해 기다리다 문득 엄마가 아침에 감자채를 썰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 넌지시 물어봤다. "엄마는 아침에 식사 준비할 때 무슨 생각해? 엄마도 귀찮고 피곤하잖아." "그냥 하는 거야. 눈이 감길락 하는데 채 썰 때만 바짝 정신 차리고." 채 써는 흉내를 내며 깔깔 웃고 답한 엄마의 입에서 나온 '그냥'이 오늘따라 와 박히는 건 내가 너무 대가를 위한 행동에 지쳤기 때문일까. 엄마의 그냥이 모여 당연하게 이어지는 내 하루들. 내일은 꼭 밥 먹고 고맙다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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