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엘리 Dec 26. 2023

이토록 멋진 모레아

티아레 향기 코끝에 맴도는 향기로운 모레아

하와이에 가면, ‘알로하’라는 인사와 함께 플루메리아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마찬가지로 타히티에 도착하면 누구나 ‘요라나’라고 인사하고, 티아레(Tiare)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우리가 도착한 모레아 섬의 힐튼 호텔 정원에도, 타히티의 상징과도 같은 티아레 꽃나무가 가득했다. 은은한 티아레 꽃향기가 코끝을 맴돌아 기분이 좋다. 남편이 티아레 꽃나무를 보고 치자나무랑 비슷하다고 했다. 티아레를 검색해 보니 정말 “타히티의 치자(Tahitian Gardenia)”라고 나온다.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티아레 꽃목걸이를 하고 파란 바다가 보이는 바에 앉았다. 메뉴를 보고 ‘모레아 파라다이스’라고 이름 붙인 목테일을 골라 마셨다. 바닐라의 원산지이면서, 파인애플 농장이 있다고 하더니, 파인애플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주재료다. 상큼하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맛있다. ‘모레아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에 걸맞다.  파란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얀 모래사장의 쭉 뻗은 야자나무에 매달린 해먹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느긋해진다. 이내 해먹에 누워 파란 하늘과 투명한 바다를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왜 이곳을 지상 낙원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만 같다.


체크인을 하고 잠시 쉬면서 모레아에서 머무는 동안 무엇을 할지 정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겠지만, 하나는 해보자 싶었다. 호텔 로비에는 익스커전(Excursion)을 안내하고 예약해 주는 전용 데스크가 있다. 크게 두 가지의 익스커전이 있는데 하나는 벨베데어(belvedere) 전망대에 올라 모레아 섬과 섬의 면적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높이 솟은 로투이산(2,949m)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노클링이다. 스노클링을 하면서 상어와 가오리, 거북이, 열대어와 함께 헤엄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스노클링을 보라보라 섬에서 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레아에서는 전망대에 다녀올까 했었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많은 천남성과 관엽 식물들의 원산지가 폴리네시아라는 것을 알고 그것들이 자연상태로 자라고 있을 로투이 산을 가까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익스커전 데스크에 문의하니 최소 인원이 되지 않아서 전망대 다녀오기는 할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스노클링을 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그날이 프렌치 폴리네시아 여행 중 가장 재미있던 날이었다.



토요일 아침,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잔잔한 바다 물결이 이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수영복을 입고 살이 덜 타도록 긴 셔츠도 입었다. 햇빛과 바다에 단련된 이곳 사람들은 상관없겠지만, 우리는 선크림도 잔뜩 바르고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해 아쿠아슈즈도 신었다. (아무리 얕은 바다라도 바닷속에서는 아쿠아슈즈 강력 추천입니다.) 스노클링 장비와 타월은 호텔에서 미리 대여해 두었다. 힐튼 호텔 전용 보트 덱으로 갔다. 작은 보트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 아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미국에서 왔다는 태국 출신 중년 부부가 잠시 후 나타났다. 아리는 그날의 손님들을 태우고, 모레아 섬 동북쪽의 모투(작은 암초나 산호섬을 부르는 말)와 산호 가든 쪽으로 배를 몰았다. 배에서 바라보는 모레아 섬의 모습이 아주 멋있다. 바다가 넘실대는 작은 섬의 가운데에 어떻게 저렇게 높은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인지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아리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듣기 좋은 유쾌한 젊은이였다. 보트를 타고 넓은 바다를 신나게 가르며 말한다.


“봐봐. 여기가 내 사무실이야. 진짜로, 정말로, 끝내주게 멋지지 않니?

 

잠시 후 배가 멈췄다. ‘크리스털 클리어’라는 표현이 이래서 나왔구나 싶을 만큼 수정처럼 맑은 라군 한가운데다. 호텔 앞의 라군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다. 아리의 말로는 날씨가 좋아서 물 색깔이 더 예쁘고, 물결이 잔잔하고 물 상태가 아주 좋다고 했다. 아리가 배를 정박하고 수중 생명체를 불러 모은다. 마치 애완견처럼 가오리와 상어, 열대어들이 가까이 온다. 남편과 나는 신나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제일 깊은 곳도 가슴을 넘지 않는 물높이다. 태국 아저씨는 무서운지 배에서 내내 동영상만 찍다가, 아리의 도움으로 겨우 물속으로 들어왔다. 역시 어디를 여행하든, 어릴 적 수영을 배워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수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도 태국 아저씨처럼 겨우 물속에서 서 있기밖에 못했을 것이다.


파랗게 빛나는 크고 멋진 트레발리도 보고, 줄무늬가 선명한 열대어도 잘 보인다. 지느러미 끝에 까만색 점을 콕 찍어 놓은 것 같은 블랙팁 상어도 만났다. 가오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날갯짓하듯 움직이는 지느러미로 안마도 받았다. 고개를 내밀고 숨 쉬고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거북이도 있다. 바닷속에서 함께 헤엄치니 내가 마치 모아나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그러다 짠 바닷물 먹으면 웩! 다시 현실 복귀.)

블랙팁 상어

한참을 놀다가 모투 앞의 산호 가든이 있는 바다로 이동했다. 산호 가든에서 자유 스노클링을 하고 그 앞의 모투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 아리에게 물어보니, 바다는 퍼블릭 지역이라 배들이 떠있어도 되는데 모투는 프라이빗 지역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산호 가든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노클링을 했다. 알록달록 꽃같이 화려한 산호가 있는 곳에는 역시 형형 색색의 조개와 열대어들이 모여 살고 있다. 오왕 멋있다. 방수팩까지 마련해서 핸드폰을 가져갔는데, 핸드폰으로 찍고 있기에는 황홀해서 기억에만 간직했다. (는 것은 변명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모투에 갔던 날은 알고 보니 모레아 마을의 연말 잔칫날이었다. 아리는 동네 청년 회장쯤 되는 것처럼 모투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동그랗게 모여 우쿨렐레 같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 물속에 둥그렇게 앉아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어른들이 가오리를 불러 함께 놀게 해주기도 했다. (이곳에서 가오리는 부르면 오는 강아지 같은 존재인 것인가?)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놀고 있는 것이다. 물 위에 튜브처럼 동그랗게 떠있는 처음보는 도구는 일종의 아이스박스 같은 것이었다. 튜브였다면 사람이 들어가 앉을 텐데, 이 신박한 도구 안에는 맥주와 음료가 가득 채워져 있고 그것이 물에 동동 떠있다. 정말 평화로운 한때로 보인다. 그중 한 레이디가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혼자 바다에 몸을 담그고, 오른손에는 담배를, 왼손에는 맥주를 들고 세상 시름 다 벗어던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일상에서의 고민이나 걱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순간만큼 그 레이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었다. 모투 중간에서 완성된 음식을 꺼내는 행사를 했다. 아리는 음식을 꺼내고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주요 멤버였다. 뉴질랜드의 항이(고기와 야채를 지열로 익혀내는 마오리 전통 요리)와 같은 프렌치 폴리네시아 전통요리였다. 땅속에 묻힌 음식을 덮고 있던 흙을 걷어내고, 면포와 바나나 잎 같은 덮개도 걷어내고 무거운 철판 뚜껑을 들어 올리자 뜨거운 수증기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와'하고 기쁨의 소리를 낸다. 구수한 음식 냄새가 난다. 위층에는 각종 야채나 고구마 같은 음식이 있었고, 아래층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가 큰 찜 솥에 담겨 푹 익혀져 있었다. 음식들을 고루 분배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우리는 손님이라고 제일 먼저 음식을 가져가도록 특별히 배려해 줬다. 음식은 수저 없이 손으로 먹는다. 푹 익은 작물과 고기, 그리고 코코넛 밀크에 절여진 폴리네시아식 생선 요리들이 썩 맛있다. 평소에는 어떤 점심을 제공하는지 아리에게 물어봤다. 보통은 비비큐를 제공한다고 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남의 잔치에 와서 잔치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리조트나 호텔 안의 모습은 그곳의 진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특히, 나와 같은 관광객이 머무는 리조트가 섬의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더 잘 안다. 하나의 리조트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담수는 모두 리조트로 들어가고 리조트에서 나오는 오수와 쓰레기는 지역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리조트는 점점 부자가 되어도, 지역 사람들의 가난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이런 관광지의 현실이다.


이날, 아름다운 바다와 그 속의 사람들을 만났다. 부디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섬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바라본다.

이전 02화 요라나! 타히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