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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엘리 Dec 27. 2023

모레아의 일요일

도마뱀의 섬 모레아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리조트 안의 레스토랑을 제외하고 모레아 섬의 어느 레스토랑도 일요일에는 영업하지 않았다. 리조트에서는 어떤 익스커전도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타운에 있는 슈퍼마켓만 오전에 연다고 했다. (이는 제법 규모가 큰 타히티 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뉴질랜드 우리 동네도 일요일에는 영업하는 곳이 별로 없는데, 프렌치 폴리네시아도 다르지 않았다. (역시,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인 건가)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종일 쉬면서 리조트와 리조트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다행히 날씨가 기가 막혔다.


힐튼 리조트 로비를 통과하면 양쪽으로 모노이 오일, 열쇠고리, 냉장고 자석 같은 기념품과 칫솔, 치약, 슬리퍼 따위의 물건을 파는 작은 상점 그리고 진주로 만든 장신구를 파는 가게가 있다. 두 개의 상점을 지나가면 제일 큰 레스토랑이 나타난다. 아침에는 뷔페 식사를 제공하고 저녁에는 식사와 공연을 하는 넓은 장소다. 지붕이 없어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마당 혹은 옥상 같은 장소와 이어져있다. 없던 입맛도 저절로 생길 것 같은 세상 멋있는 식사 장소다. 신혼여행으로 많이 오는 장소인지라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제시되어 있다. 해변의 야자수 아래에 로맨틱하게 차려진 둘만의 저녁 식사라든가, 번거롭게 식당까지 나오지 않아도 아침 식사를 워터 방갈로까지 카누 타고 배달해 주기도 한다. 실내에 있는 것보다는 바람 잘 드는 실외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룸서비스를 시키는 것보다 주로 밖에서 먹는 것을 선호한다. (신혼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바다 위에 떠있는 바에 앉아 한 잔씩 홀짝홀짝하면 더 맛있나 보다.


힐튼 호텔 조식은 참 맛있었다. 특히, 바게트 빵으로 만든 부드럽고 촉촉하고 살짝 단맛이 느껴지는 프렌치토스트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신선한 과일도 많았다. 단, 아침을 많이 먹지 않는 나는, 뷔페 말고 정갈하게 내어주는 단품으로 이루어진 아침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힐튼 호텔에서는 고양이 몇 마리가 늘 주위를 맴돌았다. 지켜보니 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꼭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이곳의 토종 비둘기나 다른 새들도 있다. 뉴질랜드의 갈매기와는 약간 다른 종으로 보이는 갈매들이 하늘을 날았다. 뉴질랜드는 참새가 카페와 테이블 위로 아무렇지 않게 날아드는데 이곳의 새들은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손가락 크기 정도의 작은 도마뱀도 곧잘 보였다. 모레아라는 섬의 이름이 도마뱀이라는 뜻이라더니, 과연 도마뱀이 흔하다. 수상 방갈로에서 얕고 맑은 바다만 바라봐도 상어며 트레발리, 스워드피시(Swordfish), 니모 친구들같이 생긴 다양한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모레아 섬에서는 수상 워터 방갈로가 아니라 가든 풀 방갈로에서 머물렀다. 방에는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이 걸려있다. ‘달과 6펜스‘에 그려진 고갱과 타히티 덕분에 전 세계에 타히티가 ‘지상 낙원’으로 알려진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가 정말 타히티를 아끼고 사랑한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후대에 이루어진 평가가 그에게 유독 냉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을 유럽으로 보내 다 팔아 치우고 타히티에 한 점도 남겨두지 않아서, 타히티의 고갱 미술관에는 그의 모작들만 남아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본국의 가족은 버려두고, 자신은 성병에 걸린 채로 13세, 14세의 어린 원주민 소녀들을 아내로 삼았고 그들에게서 얻은 자녀는 전혀 돌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함께 산 소녀들과 아이를 정말 아내와 자식이라고 여기기나 했을지 모르겠다. (고흐의 자살이 고갱의 타살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니, 고갱을 더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기도 하다.) 타히티의 자연과 폴리네시아 원주민 여인들은 그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영감을 주는 그 무엇이 아니라, 그의 현실 도피처이자 이용 대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힐튼 호텔 인테리어 담당이라면 객실의 그림을 고갱의 그림들로 채우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수영장과 바다, 방갈로만 왔다갔다하며 먹고 마시고 놀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랬기 때문에 모레아 섬에서 보낸 사흘은 보라보라 섬에서의 사흘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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