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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Aug 11. 2021

너랑 나랑 노랑

'너랑 나랑 자녀랑’이 아닌 딩크족으로 산다는 것

2014년 스페인 지하철에서 만난 '엄마와 아기'


  새벽 2시,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어여쁜 둘째 딸을 낳았다고 막 태어난 아이의 사진을 친구는 내게 보내주었다. 아이는 조그맣고 찡그린 얼굴로 처음 만난 세상이 신기한 듯 엄마의 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나는 결혼 전부터 아이 낳을 마음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에는 몸이 약했고,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나였지만 친구들의 카톡이나 SNS에서 아기 사진을 볼 때면 잠시나마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아이의 예쁜 잠깐의 순간만으로 버티기에는 힘든 일들도 생겨난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드라마에서 보는 부푼 로맨스가 아니었다.


2013년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노랑'


  '아이를 낳지 않으면 후회할까?’

  '아이를 낳으면 책임질 수 있을까?'


  이런 두 마음이 시소를 타듯이 sea, saw, sea, saw 하며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정답은 없다는 것, 그저 남편과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몸이 수시로 아프고 약했던 나는 삶에 대한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만약'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만약, 내 아이가 아프다면...'

  '만약, 세상이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면...'

  '만약, 환경이 지금보다 더 파괴된다면...'

  '만약, 경력단절이 된다면...'


2020년 장 마쉘 바스키아전에서 만난 '노랑'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가며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자녀가 주는 기쁨이 있다고 친구들은 입이 닳도록 말했다. 그럴 때면 나도 조심스레 그 기쁨에 발을 담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점에 가도,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둘러봐도 '육아'에 관한 이야기들은 넘쳐났고 또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서로 공감하고 교류하고 위로해주었다. 교회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부성부 모임에서 말하는 '가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늘 자녀가 있었고, 부부만 존재하는 가정은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었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 잠언 31장 26절 -


  성경 곳곳에는 자녀를 번성하게 한다는 말씀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자녀가 없는 삶은 '복 받지 못한 삶일까? 행복할 수 없는 삶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2021년 서울숲에서 만난 '노랑'


  새벽 2시, 친구의 사랑스러운 둘째 아이의 사진을 보며 잠시 자녀에 대한 욕망이 생겨났지만 역시나 사진 한 장만으로 드라마틱한 결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주저하는 삶, 쉽게 결단 내리지 못하는 삶, 그 삶이 나의 삶이었다. 어떤 이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런 주저하는 삶을 용납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닌 우리, 어떤 길을 가게 되더라도 너랑 나랑은 노랑이 되자고 생각했다.


  아직 봄날이 오려면 멀었지만, 도달하지 못한 봄날의 노랑을 생각하자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덧 무언가 꽃피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저하며 걷는 길 모퉁이에서 노랗게 피어난 꽃을 만날 수도 있다고. 그 꽃을 함께 바라보며 키워가자고.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 제목: 너랑 나랑 노랑 ㅣ 오은의 색그림책


P.183 옐로는 운명. 그러나 정해지지 않은 운명. 거역할 수도, 거역하지 않을 수도 없는 운명. 저버릴 수도, 저버리지 않을 수도 없는 운명. 그러나 우리는 믿기로 합니다. 운명의 카드가 마침내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노란 하트 에이스가 심장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노란 클로버 에이스가 네잎 클로버를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노란 스페이드 에이스가 여왕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노란 다이아몬드 에이스가 눈물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카드를 뒤집기 위해 트럼프를 섞고 항해의 닻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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