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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Aug 31. 2021

사랑의 단상

사랑은 사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연애를 꽤 늦게 시작한 편이다. 25살, 처음으로 3년 반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았으니까. 그 전에는 줄곧 이성을 몇 번 만나보다가 끝이 나곤 했다. 사랑이라는 것에 아니, '연애'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던 나는 학창 시절부터 연애하는 친구들을 보면 시시하다고 생각하였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면서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흔히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들이 낱낱이 해체되고 조립되고 상상하지 못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사랑은 그저 로맨틱하고 인류애적인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연애를 하며 사랑에 관한 많은 책을 찾아보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자주 상처 받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




결혼 초반 우리는 많이 다퉜지만 어느 정도 관계가 안정되고 결혼생활에 적응하면서 거의 싸우지 않았다. 그렇게 평온하게 지내온 나날이었는데 며칠 전 사건이 하나 터졌다. 남편이 내게 실수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하여 크게 다투며 오랜만에 다시 내 감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사랑에 제법 익숙해지고 또 잘 다루고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 <결혼 이야기>


사랑은 반복해도 처음처럼 낯설고 어렵다.


몇 년 전인가 남편과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스칼릿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자녀까지 낳았지만, 각자의 꿈과 방향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이혼을 준비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공감했던 장면은 이혼 과정에서 둘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로 아주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남편도 나도 눈물을 흘렸다. 엄청난 애정과 증오의 감정이 뒤얽혀 폭발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그런 감정이 화면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인 듯하다.




어느 날 사랑했던 감정이 그만큼의 증오로 되돌아왔던 기억,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기억할법한 휘몰아치는 감정을 공감이랄까 연민이랄까 이상한 감정으로 바라보며 느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때로 우리를 너무 지치게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상상까지 해보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몰랐더라면 평온했을까.


'사랑'이 순식간에 '증오'가 되는 순간


언제쯤 우리는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쩌면 사랑은 사랑으로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수백 번 아니 수천번을 속삭였을 '사랑해'라는 말이 어느 한순간에 낯선 감정이 되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꼭 함께 살아가는 것만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꿈을 향해 나아가며 멀리서 아주 가끔 만나 상대방의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것도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안녕! 잘 가.'


라고 인사하면서 지속되는 사랑도 있다.

그렇게 헤어져도 사랑은 완벽히 끝나지 않으며 어디선가 문득 이상한 감정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테니까. 사랑은 사랑으로 완성되지 않으므로 끝까지 질척이며 우리의 곁을 맴돌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은 모든 걸 다 주었던 사랑이 미움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너를 향한 미움인지 나를 향한 미움인지 모른 채 서로 뒤엉켜, 내 것인지 네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끌어안고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포옹을 나눌 것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 제목: 사랑의 단상 <알 수 없는 것> ㅣ롤랑 바르트


p.195 반전(retournment):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 정확한 사랑의 실험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ㅣ 신형철


p.26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 채울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 너의 '없음' 서로를 알아볼 ,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이상 없어질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사랑의 기술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 ㅣ 에리히 프롬


p.36 공서적 합일과는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곧 인간을 동료에게서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힘, 인간을 타인과 결합하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면서도 각자에게 자신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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