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병원에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엄마는 움직일 수 없어서 누워만 있었으므로 병실 환자 또는 보호자들과 마주치는 게 전부였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서 병원 복도라도 걸어 다녀야지 조금 살 것 같다고 할까. 그래봤자 몇 안 되는 창문까지 다 닫혀있는 답답한 공간일 뿐이지만 말이다. ㅠㅠ 하필 겨울이어서 나는 병원 실내로 들어오는 뜨거운 히터와 건조함이 너무 싫었고 속이 있는 열병은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조건 시간이 되는대로 복도로 나가서 걸었다녔다.
그렇게 그날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걷고 있는데 어느 병동의 암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부모님 간병을 왔냐고 물으면서 본인은 암환자이고 항암치료 중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는 내게 절대로 가족이어도 간병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본인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분은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며느리였던 본인이 병원 밥부터 거의 모든 간병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니 아무래도 그때의 힘든 간병생활로 인해 지금의 암을 얻게 된 것 같다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의학적 증거가 없으므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간병에 장사는 없다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 몸이 너무 망가졌고 그 후유증이 이렇게 암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것 같다면서.
사실 난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간병해 본 적도 없었고 간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엄마로 인하여 간병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노년이 되면 인간의 존엄 따위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놀랐던 것은 요양병원에 잠시 있을 때 보았던 환자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은 하물며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매달 월세처럼 병원비를 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답답한 곳에서 살아갈 정도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듯 보였지만 의외로 가족들은 모두 존재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있지만 또 그 말도 맞지만. 어쩐지 씁쓸하고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더위를 많이 타서 작은 선풍기를 침대 머리 위에 두었고 그 선풍기 바람이 자신들에게 불어온다며 구박하는 한국인 간병사들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정말 늙고 병들고 힘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없는 것인지.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고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길게 엄마를 돌본 것은 아니지만 남편 또한 나를 걱정했다. 굳이 왜 병원에 가겠다는 것인지 내 얼굴이 하루하루 늙어가는 게 보인다면서 아내를 걱정하였다. 그때는 짧은 몇 주의 시간도 아주 길고 긴 지옥의 터널 같았지만 결과론적으로 되돌아보면 그래도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엄마가 잘못되었더라면 나는 평생토록 마음이 힘들고 또 힘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또 같은 일을 겪는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때처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모르기 때문에 버텼던 것 같다고 할까. 이런 일들을 경험할 때면 인간의 삶과 병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지 가장 존엄한 노후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참 모진 생각들을 일기장에 적어내곤 했다.
문득 그 암 환자의 안부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