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동물에 대하여
몇 달 전쯤 예쁜 새 모양의 수저받침을 구입했다. 그러고 보니 난 새 모양의 장식품들이나 오브제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새 모양의 어떤 것들을 보면 곡선이나 이미지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하나쯤 구입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새에 대하여는 어떠할까?
나는 새를 싫어한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새를 무서워한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새를 무서워하기 시작한 것이. 그것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오래된 사진 앨범을 들춰보면 3-4살의 나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신이 난 모습으로 비둘기들에게 씩씩하게 모이를 건네고 있다. 아빠 말에 의하면 난 꽤나 비둘기를 좋아한 모양이다. 늘 대공원에 가면 비둘기 모이를 사서 새들에게 모이를 주곤 했다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처음부터 새를 싫어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몇 해 전인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김승일 시인의 시집 속에서 그가 새를 싫어해서 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집에는 새가 자주 등장했다.
결혼 전 부모님 집에 함께 살 때의 일이다. 현관문 바깥 창문쪽으로 참새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참새는 바깥으로 나가려 했으나 창문을 찾지 못하여 계단 안에서 심하게 날갯짓을 하였고 나는 그 소리와 동작에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주 조그마한 참새였는데 참새가 내게 날아올까 봐 무서워서 큰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생각해보면 새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사는 비늘이 달린 어류도 무서워해서 물고기 또한 만지지 못한다. 죽은 생선을 맨손으로 만져본 적이 없다. 꼭 만져야 한다면 집게나 장갑 같은 것을 이용해 물고기의 감촉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니, 지금도 동물의 모양으로 된 인형이나 조각품들을 잘 만지고 구입하지만 실제의 조류나 어류는 잘 만지지 못한다. 그러나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냥 징그럽고 무섭다는 이유정도일 것이다.
언제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동화 속 친구처럼 친근하게 어루만지고 소중히 다루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그래 왔던 것처럼 그것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건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새를 어깨 위에 앉히고 푸른 산속을 걷는 기분은 어떠할까. 별 것 아닌 그 일이 내겐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새야. 날아 와.'
아직은 새가 무섭지만 언젠가 다시 새와 친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하얀 새 위에 나의 젓가락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