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기나긴 우울의 마침표를 찍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울증을 완벽하게 이겨내려면 첫 번째로 약 복용, 두 번째로 행동치료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정신과 약은 정상 상태로 기능하지 못하는 호르몬을 대신해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거기에 행동 치료를 병행한다면 그에 따라 호르몬도 점차 나오게 되어, 보통의 인간만큼 생성돼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때 우울증이라는 병의 마지막 순간이 오게 된다. 그렇다면 완치를 위해서 무조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이 행동치료는 대체 어떤 것일까?
행동치료란?
다양한 효과검증으로 입증된 방법을 통하여 내담자의 증상과 원인, 진단과 치료방법을 적용하는 치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거치며 많은 발전을 이룸.
이렇게 써놓으니 굉장히 어려운 내용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상 우리가 평소에 겪고 해 오는 것과 결이 같다. 수업시간에 문제를 맞히면 작은 초콜릿을 보상으로 주던 학교 선생님이나 오늘의 좋았던 일, 감사했던 일을 쓰는 일기도 행동치료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치료라고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상 매우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던 것이다. 행동치료라는 자체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강화하고 좋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도우며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제거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해내가거나 해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겪었던 행동치료는 마지막 병원에서 시작됐다. 이 병원은 전에 다녔던 병원과 다르게 40분~1시간 정도의 상담을 병행하는 병원이었고 자연스레 내게 행동을 촉구하는 식으로 상담이 흘러갔다. 선생님은 한 번에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하는 내 성격이 우울증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큰 문제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아마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다. 그랬기에 지난 화에 말했던 것처럼 항상 목표를 세우고 싶어 하고 성취를 원하는 나에게 아주 작은 목표부터 제시하며 내 상태를 판단하셨다.
지금에 와서야 행동치료의 중요성도 알고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알지만 행동치료를 받던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말해서 정말 어려웠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가장 싫어했다. 선생님이 싫었던 이유에는 선생님과의 상담 때 느껴지는 내 기분의 영향이 컸는데, 상담기간 중 선생님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바로 '왜?'였다. 왜 못하셨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왜 그렇게 느낄까요? 선생님이 저렇게 말한 때는 대부분 내가 먼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경우가 많은데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에 대해 떠올리려 하면 당연하게도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었다. 생각하기 싫은 부분을 계속 생각하게 하고 하고 싶은데 못하는 나도 억울하고 죄책감 드는데도 하기를 촉구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마음 약한 사람들은 진작에 상처받고 나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T고, 왜 못했냐고 하는 선생님에게 우습지만 지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왜가 쌓여가던 어느 날 선생님은 내가 행동을 하길 요청하셨다. 아마 그동안 내 상태에 대한 판단이 끝나고 행동치료를 할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으니 실행하신 것일 테다. 첫 번째 행동은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침대는 자는 공간이고 자는 행위 이외에는 침대에 있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고 하셨다. 겨우 침대 밖으로 나오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솔직히 쉬워 보이는 동시에 어려운 과제다. 졸릴 때만, 잠 올 때만 눕는 것이 물론 엄청 건강한 행위라는 건 알지만 누워서 핸드폰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하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누워있다가 비몽사몽 잠에 빠져들고 또 일어나기 싫어서 그렇게 몇 시간을 내리 자는 것이 당시의 내 행태였기에 이걸 고치는 게 최우선 과제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다음 주에 만나기 전까지 한 번 시도해 보자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일주일 간 선생님 말을 떠올리며 노력을 해봤으나 쉽지 않았다. 첫날 선생님 말대로 하려고 충분히 자고 일어난 뒤 의자에 앉았지만 계속 눕고 싶었다. 거의 매분 매초를 누워있었더니 앉아있는 불편함이 정말 참기 힘들었다. 조금만 누울까? 그렇게 한 번 생각이 들더니 어느 순간 나는 누워있었다. 한심했다. 고작 잠잘 때만 침대를 쓰자는 그 작은 목표도 못 지키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한 번 무너지니 또 며칠간을 의지의 끄트머리도 꺼내기 힘들었다. 그렇게 예약 날짜가 다가왔다.
왜 못하셨을까요?
지금까지의 왜도 마음을 짓눌렀지만 의사 선생님이 해준 처방에 따르지 못했다는 점, 그럼에도 노력은 했다는 점, 또 그럼에도 해내지 못해서 죄책감도 쌓이고 어떤 의미에선 짜증도 나는 상태가 다 버무려져 듣는 왜는 기분이 또 달랐다. 하지만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처음엔 해보려고 했는데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누웠고 그러고 나니 죄책감도 들고 더 지속하기 힘들어졌다고.
의사 선생님은 그러셨군요,라고 대답하고는 타자기를 두드렸다. 그 짧은 적막이 너무 싫었다. 그 이후에 선생님은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입을 뗐다. 내가 당시 살고 있던 집은 투룸에 작은 부엌 겸 거실이 있는 구조였기에 잠을 깨고 나면 침대가 있는 방에서 나와 아예 그 방을 들어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는 것이었다. 침대가 눈에 보이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에선 더 유혹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공간이 분리된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의지를 덜 쓰고도 목표를 향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셨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나아지기 위해서 하는 치료지 내게 죄책감을 주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나는 그냥 그런 상황에 놓이면 스스로 생각해 보고 선택하면 될 일이라며. 그 누구라도 지속적으로 하던 행동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졌던 것도 잘한 거라고 하셨다.
그다음 예약까지 나는 다시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정말 선생님의 말대로 아예 공간을 분리하니 조금 의지를 덜 써도 되는 느낌이었다. 그 전주보다 조금은 덜 누울 수 있게 됐고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조금씩 원래 목표를 향해갔다. 한 가지 아주 작은 근본적인 목표를 잡고 그게 어렵다면 어려웠던 이유를 찾아보고, 또 다른 방법으로 목표를 향해 다가갈 방법을 찾고, 그 목표도 생각보다 컸다면 더 잘게 잘라서 아주아주 작고 귀여운 목표로 바꾼다. 그리고 그 한 발짝을 걷다 보면 어느새 지구 한 바퀴를 다 도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게 내가 겪었던 행동치료다.
나는 선생님이 짜증 났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채찍과 당근을 써가며 내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셨다. 지속적으로 해오던 걸 그 누구도 한순간에 바꿀 순 없다. 아니 아주아주 독종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큰 의지를 요구하는 행위는 오래가기도 어렵다. 나는 아주 작은 발걸음을 옮기며 어제보다 한 걸음 더 걸었음에 고마워하기로 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20시간을 자고 배달음식만 먹던 나는 한 걸음 침대 밖으로 나오고, 한 걸음 햇볕에 30분간 산책을 하기 시작했으며, 한 걸음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고, 한 걸음 미래의 나를 살피게 되었다. 사실 다 나은 시점인 지금에 와서 가끔 스스로를 못 챙기는 느낌이 들 때가 다수지만... 그럼에도 내 상태가 어떨 때 좋지 않은지 어떻게 해야 좋아지는지 가벼운 처치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게 됐다. 우울은 결국 나를 삼키지 못했고 나는 우울을 깨부숴 마침내 그 녀석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재발이 쉬운 병이라지만 내 상태가 나빠진 원인과 적절한 대처를 곁들이면 쉽게 침몰하지 않을 거란 확신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쉽진 않았지만 행동치료를 곁들여 내게 마침표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동치료를 한 지 2년이 좀 지났을 때 병원에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됐던 나는 사실 굉장히 치료 경과가 좋았던 편에 속하는데 그건 내가 선생님 말을 매우 잘 들었던 덕이 크다. 이로써 전에도 말했지만 잘 맞지 않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해도 최소한 3개월 이상 같은 병원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최악의 선생님이 놀랍게도 내 성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이끌어주다니 한 달만 다니고 그만뒀다면 모를 일이었기에.
원래 이번화에 행동치료에 관해 이야기하고 아예 완치까지 간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분량상 반으로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 편을 상편으로 정했다. 하편에서는 약을 끊어가며 들었던 생각과 완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오늘 편이 지긋지긋한 당신의 우울에 잠깐이라도 반짝이는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작고 우스운 변화라도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꽤 멀리 가게 된다. 당신 역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