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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쥔공 Jan 20. 2024

그럼에도 내가 살고 싶던 이유

미래와 현재

솔직히 우울증은 견디기 너무 어려운 병이다. 그냥 경과를 겪고 있는 것 만으로 점차 피폐해지고 점점 더 삶에 의욕을 잃어간다. 이렇게 고통을 받을 바에는 그냥 끝내는 게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다. 나 역시도 지루한 우울을 겪었고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랬음에도 결국 살아서 여기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그 과정을 다 겪고도, 지겹도록 병원을 찾고 약을 먹으며, 결국 그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을까?




사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나에게도 우울증은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자해, 자살시도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의지가 우울증을 이겨내는데 확실히 도움을 주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삶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사람과 미련이 철철 남는 사람 중에 이 지긋지긋한 병을 더 끝내고 싶은 사람은 후자일 게 당연하니까. 그래서 오늘은 그럼에도 내가 살고 싶던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태생적으로 나는 삶에 대한 집착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컸는데, 10살도 안된 나이에 이부자리에 누운 채 엄마한테 엄마도 죽냐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는 졸린 목소리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곧 잠에 들었고 어린 나는 엄마가 죽을까, 내가 죽을까 걱정에 한참이나 잠 못 이뤘다.

그리고 성공에 대한 집착은 DNA에 심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MBTI 과몰입 같지만 내 MBTI는 ENTJ며 아빠도 똑같다. 아빠한테 보고 배운 대로 나는 항상 무엇에든 성공해야겠다는 일념을 품고 있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성공에 대한 집착. 합쳐보면 성공한 삶에 대한 집착이 심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에 반한다면 마냥 패배자 같고 인생을 헛살은 것 같았다. 당시에는 그게 독이 될 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내 발목을 잡게 된 건 성공한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 했으며 시간 낭비를 싫어했다. 뭐든 특별하고 특출 나고 유명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언제나 늘 계획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욕했다. 이렇게 해서 네가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되고 싶은 건 남다르면서 왜 네가 하고 있는 노력은 남과 같거나 못하냐고. 그래서 뭐라도 되겠냐고.


그래도 내 의도를 숨 가쁘게나마 잘 따랐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처음으로 겪어본 큰 실패는 더 나를 무너뜨렸을 수도 있다. 주저앉아서 나의 실패를 곱씹었다. 내가 생각하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작은 실수도, 작은 실패도, 큰 실수도, 큰 실패도 모두 내 발목을 붙잡았다. 자꾸만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잘못했다는 기분은 언제나 완벽해야 했던, 성공만 해야 했던 내게 말도 되지 않았다. 내가 기대하던 내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미래를 계획하고 성취하고 성공한 내 삶에 좀 더 다가가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르게 돼버린 거다.








결국 그렇게 우울증이 스멀스멀 드러나게 된다. 그를 뒤로하고, 이제 끝날 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병원에서 상담을 하며 나는 좀 더 유연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성공과 그로 인해 반짝이는 내 삶이었지만 그걸 모두 놓을 수는 없어도 좀 더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계획하고 그걸 실행하지 못하고 자책하고 또 무너지고를 반복하던 내게 선생님은 아주 작은 말도 안 되는 것을 계획해 보라고 했다. 다짜고짜 오늘부터 30분씩 산책을 하겠다가 아닌 오늘은 침대 밖을 나오겠다부터. 그다음 날엔 오늘은 방 밖을 나오겠다. 그다음엔 오늘은 거실에 5분만 앉아있겠다. 오늘은 현관문 앞을 나갔다 들어오겠다. 오늘은 대문 앞을 나갔다 들어오겠다. 오늘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벽돌을 쌓듯이 하나씩 쌓아가자고 그렇게 얘기하셨다. 아주 작은 성공은 아주 작은 성취를 불러일으켜 그다음 단계를 나갈 수 있게 한다. 나는 항상 커다란 성공만 바라보고 실패하며 죄책감에 허덕였는데 이게 계획이라고? 싶은 걸 계획하라는 그 얘기에 생각의 전환이 생겨났다. 어차피 커다란 목표를 세워도 나는 지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프니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아주 작은 목표부터 나아간다면 언젠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게 될 테다.








아직도 나는 성공한 삶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나를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웃긴 건 정작 내가 가졌던 삶에 대한 강한 의지의 주 원동력이 나를 잡아준 게 아니라 내가 하찮게 생각하던 것들이 나를 잡아줬던 것이다. 시간 낭비였던 것들. 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오늘 하루 할 일을 쉰다거나, 소소하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열심히 꾸민 일기에 쓰는 것, 재밌는 유튜브 영상으로 스트레스를 날린다거나, 피곤할 때 낮잠을 자는 것. 성공이란 목표는 너무나 높고 닿기까지 아득하지만 일상의 소소함이, 그리고 그 소소함에서 나를 아끼며 함께 나아간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나는 특별한 날에만 특별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을 내가 특별하게 느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일상적인 게 충분히 특별할 수 있으니까.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하는 태생은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떤 상황을 힘들어하는지, 어떨 때 아픈 건지 조금은 알게 됐다. 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아끼는 법에 관해선 영 초짜였던 것이다. 오늘의 나에게 작은 칭찬이라도 건네고 조금이라도 더 너그럽게 대해주기. 우습게도 그 평범함이 성공에 관한 열망보다 더 나를 잡아줬다. 안정적인 삶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그 막연한 확신이 드는 기분이 나를 여기로 이끈 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성공하지 않고 싶다는 건 아니고 과정에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기로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바쁘게 달리다 길가에 핀 들꽃의 생김과 향도 놓친다면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지칠 뿐이다. 나는 우울증이라는 고난을 겪고서야 그걸 깨닫게 됐다. 나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은 나뿐일 텐데 내가 내게 모질다면 내 편은 어디 있을까. 나는 영원한 나의, 내 편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럼에도 내가 살고 싶던 이유는, 내가 내 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 평온한 일상과 한때의 즐거움과 순간의 반짝임을 너무 바라서, 내가 나를 위했기 때문에 나는 살기로 했다. 다음 화에는 우울증에 끝맺음을 찍었던 기록을 하고 그다음 화에는 당신이 그럼에도 살고 싶은 이유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오늘 화를 보고 당신이 살고 싶은 이유를 떠올리게 됐으면 좋겠다. 댓글로 써준다면 더 고맙겠지만 쓰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재차 말하지만 당신은 영원한 당신의 편일 테니까. 언제나.





사진: UnsplashLucas Marco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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