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병명은 무엇인가요?
제목에서 보이듯 그리고 지나온 화에서 말했듯, 처음 내가 진단받은 병명은 주요 우울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결합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자신의 병명을 정확히 알 수도 애매하게만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본인의 우울증이 아니라 지인을 위해 읽게 된 분이라면 지인의 병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나의 병명에 관해서 저렇게 알고 병원을 다닌 지 꽤 되었을 때, 나는 새로운 변화를 맞는 시점이 오게 됐다.
때는 지방의 개인병원을 지나 부산의 대형병원, 부산의 개인병원, 다시 처음 그 지방의 개인 병원으로 돌아갔을 당시였다. 지난 화에서 대형 병원에 원래 먹던 약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대부분을 바꿨다고 썼는데, 그 이후에 또 병원을 바꿨기 때문에 약의 변화가 조금 더 있었다. 그냥 첫 병원에서 받아왔던 약이 없다고 보면 되는 상태였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잠깐의 기간 동안 자취방을 정리하려 지방에 머물렀을 때, 원래 다녔던 병원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내 약을 보더니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아직 어리기에 수면제 대신 수면유도제 같이 약한 약을 넣어 오셨는데, 지금은 온갖 강력한 성분의 약이 다 들어있는 데다 양도 훨씬 늘어왔다며 아쉬운 표정이셨다. 게다가 그렇게 훨씬 센 약을 많이 먹고 있는데도 상태가 좋지 않은 점에서 선생님은 더 속상해 보이셨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상담이 끝나갈 때쯤 선생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셨는데, 처음부터 나의 병의 경과를 지켜봐 왔으며 현재까지 더 나빠지는 상황을 고려해 본 결과 우울증이 아닌 다른 병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셨다. 바로 그것이 조울증 2형이었다.
조울증 2형이란?
일반적으로 조울증이라고 부르는 병은 양극성장애 1형. 조증과 울증의 극을 둘 다 경험.
양극성장애 2형은 우울증 기간 중 단 한 번의 경조증(조증보다 약하게 업된 상태)이라도 겪는다면 우울증이 아닌 양극성장애 2형으로 진단.
주요 우울장애보다 훨씬 우울의 강도가 심하고 깊은 특징이 있음.
제가 조울증이라고요? 나는 그렇게 조증을 느낀 적이 약 부작용 말고는 없는 것 같은데?
처음에 드는 생각은 이랬지만 일단 선생님의 말을 들어봤다. 조울증 2형은 우울증 기간 중 단 한 번이라도 경조증을 겪는다면 성립하기 때문에 사실상 진단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고 하셨다. 선생님을 만나고 있는 기간 중에 내가 경조증을 겪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으나 병원에 가기 전부터 우울증을 꽤 앓아온 만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때에 잠깐이라도 겪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선생님이 나를 조울증 2형이라고 판단하신 건 경조증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주요 우울증보다 심각하게 더 우울해하는 상태와 꾸준한 상담과 약 복용에도 더 나빠지는 경과를 통해서였다. 조울증 2형이라고 의심이 되어 기분조절제를 약에 추가했으면 하셨는데 기분조절제는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고 경과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기에 서울로 올라간 이후에 조울증 2형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들었다고 전해주라고 하셨다.
나의 첫 번째 선생님과의 면담은 그렇게 끝났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특별하겠지만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처음 만난 상담사님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 그리고 처음 내가 치료를 위해 방문한 첫 병원과 나의 치료를 꾸준히 도와주신 의사 선생님. 내 우울증의 첫 단추가 모두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뿐이어서 감사하다. 그 처음중에 조금이라도 삐끗했다면 우울증의 기나긴 투병이 얼마고 더 늘어날 수도 있었을 테다. 특히 지속적으로 나와 만나며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의사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셨는지 알고 끝맺음을 맺었기에 좋은 마무리로 남았다.
서울로 올라간 뒤 새로 찾은 병원은 40분~1시간 정도 상담을 같이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조울증 2형일 수도 있다는 마지막 진단을 얘기했고 새로운 선생님은 일단 지켜본 뒤 기분조절제를 사용할지 결정하겠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뒤 기분조절제를 사용하게 됐고 놀랍게도 기분조절제를 사용하니 나의 상태가 확연히 나아졌다. 물론 상담의 효과 역시 있었겠지만 확실히 기분조절제 역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기분조절제를 완치시점까지 복용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뒤에 기분조절제를 빼고 항우울제 관련해서만 먹던 때도 존재했다. 결국 기분조절제도 항우울제도 온갖 약들도 다 끊었을 때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제 병명이 뭐였을까요?
선생님은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정신병이라는 게 딱 하나의 구역으로만 나눠지기도 어렵고 여러 가지가 혼재해 있는 경우도 허다한 데다 전혀 다른 약에 잘 반응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의사는 그냥 적절한 상황에 적절해 보이는 약을 투여해 가며 경과를 지켜봐야 할 뿐이라고. 잘 듣는다면 잘 된 일이고 잘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국 나는 주요 우울장애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도, 양극성장애 2형도, 뒤에 다룰 공황장애도 지나왔지만 확실히 무엇이라고 딱 정해지진 않았다.
여기서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의 병명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알고 있든 추측만 할 뿐이든, 나는 당신의 병명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았으면 한다.
병명이라는 게 참 그런 것이, 알고 나면 찾아보게 된다. 검색해서 최후의 최후에는, 최악에는 어떤 지 알고 싶어 진다. 나는 여러 병명을 지나올 때마다 수많은 검색을 해왔다. 그리고 내게 확실하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더러 걱정했다. 그렇지만 그 최악의 경우들은 결국 내 미래엔 존재하지 않았고 지나온 시간엔 거기 갇혀서 여러 상황을 전전했던 나만 남았다.
답은 두 선생님의 마지막 말에 존재한다. 첫 선생님은 경조증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심각한 우울삽화와 병의 진행 경과로 조울증 2형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셨고, 마지막 선생님은 약이 잘 듣는다면 잘 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되는 거라고 하셨다. 결국 내가 가진 병의 병명이 무엇이든 나랑 똑같이 발현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각자의 치료방법과 잘 듣는 약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잘 되지 않으면 잘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막힌다면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면 된다. 내가 이 글들에서 제시할 방향마저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 나에겐 100%가 되었지만 당신에게는 100%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안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당신의 병명에 갇히지 말자. 전혀 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답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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