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폐쇄병동이라는 말이 주는 중압감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싶다. 지난 화에서도 말했듯 정신과 자체가 무시무시하고 어려운 느낌인데 폐쇄병동은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느낌이 든다. 여러 미디어에서 나쁘게 묘사되기도 했고 갇힌다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 역시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폐쇄병동은 닫혀있는 병동일 뿐이다. 정신과에서 운영하는 다른 병동으로는 개방병동이 있다. 이 역시 말 그대로 열려있는 병동이다. 뜻만 보자면 그렇게 무서운 이름도 아닌데 폐쇄병동이라는 말이 주는 무거움이 너무 커서 사람들은 보호병동이나 안전병동이라는 말로 돌려 말하고는 한다. 그래서 내게 폐쇄병동을 권유했던 선생님도 그런 연유로 당시에 보호병동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때 찾아본 바로는 폐쇄병동이라는 말을 보호병동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하던데 지금 검색해 보니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아직도 정확한 뜻이 나오는 단어는 폐쇄병동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에는 원래 뜻대로 폐쇄병동이라고 썼다. 하지만 보호병동이라는 말도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동이라는 점은 정확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제 글을 시작해 보려 하는데 먼저 짧은 퀴즈 하나를 던져보려고 한다. 아래에서 어떤 우울증 환자가 가장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이 드는가?
1. 지나치게 각성이 되어 며칠째 잠 못 이루는 환자
2. 슬픈 영화를 본 뒤 3시간째 눈물을 흘리는 환자
3. 좋아하던 음식을 먹어도 아무 감흥이 없는 환자
4. 심한 우울감에 자살시도를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환자
결정했다면 답을 말해주겠다. 답은 바로 3번이다.
고작 짧은 문장 하나로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3번이라고 말한 이유는 있다. 보통 사람들은 4번을 가장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 살고 싶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3번이 더 심각한 상태다.
우울증 환자의 경중을 매겨보자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울하고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모습 등은 상대적으로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도 이미 심각한 우울 상태다.) 그것보다 더 심각해진다면 자해, 자살시도 등을 하게 되고 그것보다 더 심각해진다면 아무것에도 아무 느낌도 얻을 수 없다. 좋다 싫다 조차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수면에 떠있는 해파리처럼 되는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냥 보기에는 이들이 자해하는 환자보다 나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해하는 환자는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태지만 저 상태의 환자는 감정도 행동도 없다. 보호자가 같이 있을 때 나가라고 소리치는 상태가 아무 말 없이 옆에 무의미한 눈으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은 상태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완연한 포기. 한 마디로 이렇게 줄일 수 있겠다. 아무 기대도 없어서 즐겁지도 허탈하지도 않다. 무가치함에서 그저 버티고 서있는 이들에게 삶은 지루하고, 그런데도 지루하다는 감정조차 느끼기 어렵다.
내가 폐쇄병동 권유를 받았을 때도 바로 딱 저런 상태였다. 당시 얼마 전 부모님께 우울증을 밝힌 상황이었고 부모님의 걱정으로 본가에 반강제로 내려오게 되었으며 딱히 하는 것 없이 집에서 가만히만 있었다. 무의미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으나 그렇게 느끼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엄마가 깨우면 마지못해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나를 신경 써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 왔지만 밥 한 그릇조차 다 먹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전에 우울증 상담을 꾸준히 받아온 곳은 지방의 작은 병원이었는데, 부모님은 큰 병원에 가봐야 확실할 거라며 부산의 대형 병원에 예약했다. 병원에 처음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정신과는 동네 병원이나 큰 병원이나 다를 게 없다고 말했고 내 상태가 심각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전에 먹던 약이 대부분 없어서 부산에 온 이후 거진 약을 다 바꿨다. 아무래도 그래서 상태가 더 나빠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에도 한 번 더 그 병원을 찾았지만 너무 멀고 의사 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던 탓에 큰 병원의 경험은 두 번으로 마무리된다.
새로 찾아간 집 앞의 병원은 개원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한가했던 덕에 금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 간단히 말했다. 그 뒤에 기본적인 대화 몇 마디를 더 했던 것 같다. 평범한 상담시간이라고 생각했으나 내 이야기를 듣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나빠졌다. 그러더니 혹시 보호자 같이 올 수 없냐고, 아니면 보호자랑 통화라도 할 수 없냐고, 지금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보호자한테 꼭 얘기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의문스러워 내가 뭐가 그렇게 나쁘냐고 되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지금 자기가 약을 주면 수면제를 한 번에 다 먹고 죽으려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한 건 의사로서 괜찮은 발언은 아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걱정이 되셨구나 싶다. 하지만 당시 상담을 받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죽지 않을 거고 자해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말해도 의사는 보호병동에 입원하면 좋겠다고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실랑이에 지쳐 집에 가서 이야기는 해보겠다고 하며 나왔다. 선생님은 의심과 걱정의 눈초리가 섞인 채로 떠나는 나를 보셨다.
병원을 나서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팔이 아냐?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요동치고 죽고 싶고 자해를 할 때 보다 나는 평온하고 멀쩡한 것 같은데, 원래 건강한 사람은 감정이 날뛰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현재 더 나아진 상태일 게 아닌가. 엄마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의사의 말을 전했다. 당장 어떻게든 죽으려고 할 거 같아서 보호병동에 입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엄마아빠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나 멀쩡하다고, 그러니까 나는 안 가겠다고 어필했다. 너무 그 의사가 걱정부터 하는 것 같다고.
그 이후에 부모님도 상의하시고 입원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셨지만 결국 나는 폐쇄병동에 가지 않고 그 시기를 지나왔다.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가 산채로 들어온 것에 대한 조금의 안도와 여전한 의심을 함께 가지고 계셨다. 나는 그때 의사 선생님을 돌팔이라고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역시 의사 선생님이 보는 내 상태가 정확했다. 가장 가라앉아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가장 위험한 것은 그 상태가 가장 심각해서도 있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힘을 얻는 순간 바로, 자살시도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아무 의지도 없고 생각도 없고 흐르는 듯 살았지만 약을 복용하며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바로 그렇게 하려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의사가 걱정하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당시 쓰인 일기를 보면, 내 기억 속에선 나름 괜찮게 지냈던 나날들이 생각보다 훨씬 어두운 것을 알 수 있다. 뭔가 좋았다 싫었다가 없는 회색 세상. 그 세상에서 벗어날 힘이 주어질 때 벗어나려고 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다행히 나는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뒤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게 더 힘들다고 느껴서 혼자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부모님은 아픈 아이가 또 떠나고 싶다고 하니 정말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고 내 결정을 지지해 주셨다.
결국 나는 폐쇄병동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았다고 해서 폐쇄병동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폐쇄병동의 목적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폐쇄병동은 사람을 가두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치료하기 위한 곳이다. 당장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며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것이다.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물론 입원한다고 해서 병이 싹 낫는 것도, 입원했다 퇴원한다 해서 싹 나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이곳은 '위기'를 좀 더 쉽게 넘길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위기를 넘기면 결국 다시 일어날 기회는 온다. 그러니 막연히 두려움과 걱정만 가지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내 글이 정신과의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췄다면 오늘은 폐쇄병동의 문턱을 아주 조금이라도 낮췄기를 바라며 이만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