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첫 번째 발작이 있던 날, 나는 칼을 찾았다. 그전까지 그래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첫 번째로 들었던 커터칼은 너무 날이 둔해 30도 칼을 찾아냈다. 날이 아주 잘 든다며 수업시간에 필요해서 샀던 것인데, 그 말을 떠올리며 내 살에 잘 들길 바랐다. 위에서 말했듯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는 내가 고통에 대한 겁도 없이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 한 번 그으니 상처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이상하게 짜릿했다. 그리고 또 시원했다. 어디서 본 말처럼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제법 봐줄 만할 때까지 손목을 그어댔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벼워지니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걸 친구에게 보란 듯이 보냈다. 니가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라고.
몇 번째의 발작이 있던 날,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옷을 주워 입었다. 밖으로 나가 옥상에 올라갔다. 3층짜리 자취방의 옥상에서 몸을 죽 빼고 아래를 내려보았다. 죽기에 확실해 보이지 않았다. 밖에 나가 음습하고 어두운 골목을 한껏 느리게, 힘을 모두 빼고 터덜터덜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누군가 나를 죽여주길 바라며 흉흉한 골목 사이를 다녔다. TV에 나오는 사건들 중 하나로 끝내면 깔끔할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죽일 방법도 모르겠으니 제발 누구라도 나를 죽여줬으면. 그렇게 몇 시간을 배회했으나 동이 틀 때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 Unsplash의Stormsee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