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쥔공 Dec 16. 2023

괜찮다가 또 구렁텅이로 처박히는 것

다시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도

지금이야 의기양양 완치니 뭐니 떠들고 있지만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 당시 순식간에 호전되거나 하던 것은 절대 아니다. 태생이 긍정적인 편이고, "Look on the bright side!"를 실천하려 노력하는 나였어도 우울증을 견디는 건 쉽지 않았다. 전부터 말했듯 내 우울증은 좋아지는 듯 보이다가 어느 순간엔 그냥 냅다 처박혔다. 이유가 없어도 처박혔고, 있으면 더 심하게 처박혔다. 한 번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면 오랜 기간 다시 우울에 잠식당해 고통받아야 했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는데도 그랬고 약을 변경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그제야 다시 끌어올려졌다. 누군가가 나를 심해로 처박고 올라오지 못하게 꾹 누르고 있었다. 나는 주어진 우울에 강제로 숨이 막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면, 나는 스스로 '발작'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하게 됐다.








발작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병의 증세나 격한 감정, 부정적인 움직임 따위가 갑자기 세차게 일어남'이다. 이렇게 보니 정확히 사전적인 정의를 꿰고 있지 않았던 내가 당시 적절한 단어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발작이라고 일컫을만한 경험이었으니까. 깊은 우울이 나를 끌어내릴 때 강제로 자극을 받은 실험쥐처럼 바르르 떨어댔으니까.




나의 첫 번째 발작을 기억한다. 당시 내게는 10년 된 친구가 있었다. 거의 항상 모든 생각이 비슷했던 그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이후로 절친이 되었다. 관심사도 비슷했고, 부모님의 소득 수준이나 각자의 생활방식 역시 비슷했다. 너무 잘 맞던 그 친구가 내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 생각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게다가 그동안 그 친구와는 다툼이라고 말할 일을 거의 겪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그 친구는 나의 의견에 반하는 말을 했고 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온 세상이 다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내 의견을 그 친구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단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부정당한다고 느꼈다. 내 모든 것에 반대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하나의 의견에 반대했다는 것 만으로 내 세계가 와르르 망가졌다. 너는 내 편이어야 하는데, 너는 내 편이었는데. 왜 내 말을 안 들어주냐고. 분노가 차올랐다. 너무, 너무 화가 났다. 온몸을 휩쓰는 감정 때문에 손을 벌벌 떨었고 급하게 칼을 찾았다. 그래, 칼이었다.


그날은, 그전까지 자해해 본 적 없던 내가 처음 자해를 했던 날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모든 면에서 잘 맞는 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 그 친구가 나랑 맞지 않는 모든 면을 맞춰줬다는 뜻이 된다. 나는 이기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런 나를 10년 동안 견뎌온 친구가 처음으로 부정을 들었을 때 내가 보인 반응은, 손목을 그은 사진을 보내는 것이었다. 결국 그 친구와는 몇 년 뒤 절교를 당하게 되지만, 그 친구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은 나였다.








나의 몇 번째일지 모를 발작 역시 기억한다. 위와 같이 '사건'이 있던 발작과 달리 이번 발작은 사건조차 없었다. 잘 지내고, 잘 웃고, 잘 행복했다. 슬픈 걸 보면 울고, 기쁜 걸 보면 충만했다. 그러다 내가 먹고 자고 살고 웃는 이게 뭔지, 갑자기 온몸이 벌벌 떨렸다.


나는 아프다. 나는 고통스럽고 나는 행복할 수 없다. 내 상황에서 내가 행복할 수가 없는데, 내 생각엔 그런데 왜 내가 행복한 건지. 죄책감이 들었다. 동시에 공포심이 훨씬 더 크게 들었다. 내 병은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는데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상태가 좋은 건지. 그건 '약' 때문이라고. 나는 죽을 사람인데 약이 나를 강제로 살리고 있다고. 나는 약에 조종당해 움직이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약이 없으면 어차피 당장 올라가서 뛰어내려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죽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해서 살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때는 부모님에게 내 병을 말한 지 1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나는 죽고 싶다고 엉엉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경상도 사람이라 그리 다정하진 못해도, 어색하게나마 나를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그 어수룩한 위로가 내 발작을 잠재웠다.




가라앉았던 날의 일기들








언젠가 나아질 거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떨어지는 느낌은 처참하다. 천천히 침잠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물속으로 쑥 집어넣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순식간에 처박히는 상태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강제로 감정에게 당하며 벌벌 떨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감정이다. 작은 의견 충돌 때문에 온 세상에게 부정당한다고 느끼는 거나, 갑자기 약이 나를 조종한다고 느끼는 것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감정이 순식간에 몰려와 나를 잠식시키기에 병인 것이겠지. 그리고 그런 일이 매번 반복되기에 또한 병인 것이다.


우울증이란 게 으레 그렇다. 한 번만 떨어지고 말 거라면 치료를 할 이유도 없었다. 약만 먹어서 평생 멀쩡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치료하고 노력해야 하는 병이다. 언제든 다시 나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완치할 수 있던 건 그 파동을 버티며 행동치료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치료를 통해 내가 처박는 횟수를 줄여갔고, 처박아도 더 쉽게 돌아올 수 있었으며, 나중엔 가라앉는 일이 아예 사라질 수 있었다. 행동치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지만 완치라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약물, 상담, 행동까지가 필수라고만 먼저 말해두겠다.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는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었다. 우울증은 언제든 다시 안 좋아질 수 있다. 그 말은 언제든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깊은 우울에 끌어내려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버티기를. 치료의지가 매우 강력했던 나조차도 잔뜩 휩쓸렸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은, 치료하고 있는 중이라면 언제든 다시 솟아오를 거란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 무수한 파동들에 지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언제까지라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냥 평생을 그 흔들림 속에 살아갈 것 같고, 지치고 지쳐서, 그냥 끝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 우울을 버티고, 또한 다시 상승하고, 다시 하강하고, 언젠가 다시 상승하겠지만, 결국 당신에게도 완치는 열릴 거라고 말하고 싶다. 몇 번이나 병원을 바꾸고 약을 바꿨는데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던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완치로 가는 정확한 길을 몰랐을 뿐이다. 그러니 버텨라. 지리하게 깊은 동굴 안에도 볕 들 날은 올 것이며, 결국 완치의 문을 연 내가 당신 손을 끌어올 테니까.





사진: UnsplashJosh Nuttall


이전 05화 약이 나를 강제로 살리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