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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쥔공 Dec 09. 2023

약이 나를 강제로 살리고 있다

두렵고 무서움에도,

첫 부작용이 온 날의 일기








지난 화에 말했듯 오늘은 정신과 약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의 우울증 양상은 항상 비슷했기에, 부작용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약을 먹으며 우울증이 괜찮아지나 싶으면 어느 순간 급격하게 바닥으로 꽂혔고, 그럼 의사는 약을 증량하거나 새로운 약을 추가했다. 위 일기는 정신과를 다니고 처음으로 부작용이 왔을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는데, 병원을 다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새 우울삽화가 찾아왔고 약 부작용을 겪은 모습이다.




내 우울증의 증상은 기분저하, 무력감, 피로함, 무가치함, 지나친 수면, 폭식 등으로 이루어졌고 병원을 다니는 동안 일상생활을 나름 잘 영위할 수 있게 되었으나, 다시 우울증이 심해지면 또 늘어지고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늘어지는 상태를 줄일 수 있는 약을 좀 더 증량했는데 대부분의 부작용이 여기서 나타났다. 전 화에서 말했듯 완벽한 양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도 없고, 나에게 정확히 어떤 약이 맞는지도 한 번에 알 수는 없다. 그전에는 잘 맞았던 약을 아주 조금 증량했을 뿐이지만 겨우 반 알 차이로 첫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약을 먹으며 내가 겪었던 부작용은 바로 '각성'이었다.








각성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사람들은 각성되기 위해서 카페인 수혈 등을 하잖아요?


적당히 일상생활을 빠릿빠릿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각성된 것이 좋은 일이지, 지나친 각성은 좋지 못하다. 일단 각성되면 수면욕이 줄어든다. 며칠 동안 2, 3시간 자는 게 이어져도 전혀 졸리지 않고 더 이상 자는 것도 어렵다. 못 자는 만큼 다른 걸 할 수 있어서 좋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정도가 아니다. 누가 강제로 나를 깨워서 강제로 활동하게 하는 기분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안절부절못하며 누가 뒤에서 쫓는 듯한 불안감이 든다. 분명 며칠째 수면이 부족할 텐데 더 자려고 하면 고통스러울 뿐이고 편안하게 휴식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당시의 나는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나면 지쳐 돌아와 바로 눕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각성된 나는 집에 돌아와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파트너들 선물 주려고 밤새 초콜릿바를 만들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잠깐 2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출근을 해도 계속 깨어있는 기분이 유지됐다. 머릿속은 각성된 느낌이 지속됐는데 당연히 이상했다. 애초에 체력도 별로 없던 상태에서 그런 일정이 힘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몸을 갉아먹고 있다고 느끼고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강제로 쥐어짜 내진 시간에 강제로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 상태는 직전의 내가 우울증이 심각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는데, 우울증이 심한 상황의 나는 누워있는 시간이 대부분이 이었다. 도피성 잠만 내내 자던 내가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니 이상했다. 처음 겪는 부작용이지만 아 이게 부작용이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했고 의사 선생님은 그때 증량했던 파란 약을 다시 전처럼 반알로 줄였다. 그러자 그다음부터는 부작용이 싹 사라졌다.




이 이야기에는 재밌는 뒷 이야기가 있다. 몇 년이 지나고서 다시 깊은 우울이 찾아왔을 때, 새 병원에서는 내게 부작용을 일으켰던 이 약을 한 번에 한 알 추가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다니던 병원이 아니었기에 부작용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사용하셨을 테다. 나는 약을 받아 들고 저번에 부작용이 있던 약이라 꽤 걱정을 했으나 놀랍게도 한 번에 한 알을 증량한 그 파란 약이 내게 잘 맞았다.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았고 한동안 내 상태와 잘 맞아서 1알 반까지 증량해서 먹은 경험이 있다. 겨우 반 알 증량으로 고생시켰던 그 약이 맞나 싶을 지경이다. 이런 일도 있기에 부작용이 있는 약도 다시 볼 일이다.








각성에서 한 칸 더 나아간 부작용도 있다. 몇 번의 우울을 다시 경험한 뒤의 어느 날 나는 여러 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중 분홍색의 동그랗고 커다란 약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약을 먹고 있을 때 또 각성을 경험했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사그라들었고 그 뒤에 괜찮아졌으니 그 약을 계속 먹었다. 그 약을 2알까지 꾸준히 먹고 있던 어느 날,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과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말했다.




손을 왜 이렇게 떠노?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손을 떨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엄마 말대로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당시에 우울증을 숨기고 있던 나는 일이 힘들었다는 둥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국을 뜨는데 손이 벌벌 떨려서 국물을 줄줄 흘릴 정도면 말 다했지. 부모님이랑 함께 하는 식사자리라 불편해서 그런가 생각하고 넘기려는데, 그 이후에도 내 손은 계속 떨렸다. 혼자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심지어 밥을 먹지 않는 중에도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나는 병원에 찾아갔을 때 손떨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분홍색 약에서 아주 특수한 경우에 발현되는 부작용이라고 했는데 일단 그 약을 제거해 보고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확인해 보자고 하셨다. 놀랍게도 분홍색 약을 먹지 않게 되자 바로 손 떨림이 나았다.








부작용은 항상 원인이 되는 약을 줄이거나 없애면 금세 사라졌지만, 이쯤 됐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로, 약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약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약을 먹기 전에도, 먹은 후에도, 남들이 뭐라 하는 걸 넘어서 내가 경험한 바 역시 약을 두렵게 만들곤 했다. 내가 움직이는 게 내가 아니라 약이 하는 것 같아서. 약이 나를 조종하는 것 같다고. 나를 강제로 살리고 있다고. 이 생각은 급격하게 우울해졌을 때 바닥에 튕긴 공처럼 툭 튀어나와 매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애초에 우울증이 심했던 내가 약을 먹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의사의 권고도 무시하고 상담치료만 병행하겠다고 했다면? 애초에 내가 간 병원이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도 아니었을뿐더러 대부분의 병원이 이 병원에 속한다. 몇 분의 대화만으로는 내 상태를 보통사람의 행동만큼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내가 상담 전문 병원에 가면 완치했을까? 그것도 똑같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병원에 가는 것도 의지를 필요로 한다. 누워있을 힘밖에 없는 사람인데 꾸준히 상담을 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가더라도 상담만으로는 심각한 우울상태에 있는 나를 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약을 먹다가 두려움에 혼자 끊었다면 어땠을까? 혼자서 약을 끊은 사례도 주변에서 보았지만 보지 않았더라도 알 수 있다. 약을 통해 호르몬을 조절 중인데 마음대로 끊는다면 더 심각하게 처박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국 이 IF들은 모두 하나로 귀결된다. 약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거다.




지난 화에서 나는 약물 부작용에 관해 글 쓰는 이유를 밝혔다. 내가 겪은 것을 바탕으로 당신이 스스로 판단하길 바라기 때문에. 아직도 약을 고민하는 당신이 판단을 내리는 걸 돕기 위해서. 정신과 약을 먹는 동안 부작용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약에 다시 변화를 준다면 좋아지는 것도 금방이며, 두렵다 해도 좋은 작용이 훨씬 크다.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을 가진 사람에게 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번화와 이번 화를 본 독자님께서 부디 좋은 판단을 내리길 빌며 글을 마친다.






사진: UnsplashTowfiqu barbhu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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