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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쥔공 Nov 19. 2023

제가 우울증이라고요?

나도 몰랐지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반쯤 확신이 든 이후에도 병원에 간다는 것은 또 다르게 느껴졌다. 지난 화에서도 우울증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정신병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어려웠다고 말했는데, 정신과를 간다는 건 정말 정신병자 그 자체 같아서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또한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여러 검색 끝에 병원비가 얼마나 든다더라, 약값은, 상담값은 또 얼마나 천차만별이라더라, 하는 말을 주워들으며 금액에 대한 부담 역시 있었다. 그때의 난 웬만하면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냥 의지박약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확하게 무엇에 의한 어떤 병인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남들도 힘들다는데 나만 별난 건가 싶었다. 병원에 갔더니 그냥 내가 게으른 거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 완벽한 확신은 없었다. 분명 아픈 것 같긴 했으나 아픈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이쯤에서 나는 정신건강증진센터라는 것을 찾게 된다. 현재 이름은 정신건강복지센터로 변경된 듯 보인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지역사회 내 정신 질환과 정신 건강 관련 사업을 실질적으로 수행



나는 집 근처에 있던 센터를 떠올렸고 그 센터 사이트에 들어갔다. 사이트 내에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봤더니 20점부터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친다면 두 배 이상인 4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다. '다 이 정도로 나오는 거 아니야?' 하고 또 의심하며 친구들에게 해보라고 했더니 3점, 5점 등 모두들 아주 낮은 숫자를 받았다.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긴 하지만 마주하기도, 금액도 걱정이었던 나는 사이트에 질문글을 올렸다. 금액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며칠 내로 받아본 답장에선 일체 금액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답변을 받고도 정작 마주하기가 두려워 내가 센터에 찾아간 것은 한 달 뒤였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2018년의 경험이기에 혹시 금액 부담에 걱정이 되는 분들은 센터에 연락을 취하시면 되겠다.








이쯤에서 센터의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는지 말해보겠다. 처음의 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고, 인터넷에 검색해도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몇 없는 자료에선 센터 사람들에 대한 악담이 가득했고 센터에 가서 더 상처를 받아 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센터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내가 센터에 찾아가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 중의 하나인데, 우울증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마주하기도 두려운 와중에 찾아가선 면박이나 들을지 모른다니 당연히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직접 경험하고 난 센터는 훨씬 다정하고 친절했으나 내 경험이 전부는 아니며 다른 사람의 경험 역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친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왜 가야 할까? 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이 병이 있는 환자가 스스로의 병을 알게 하고 그 뒤 나을 수 있게 병원으로 연계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금액에 대한 부담이 있으며, 본인의 병에 확신할 수 없던 사람에게 확신을 주기에는 가장 낮은 문턱이다. 금액에 부담이 없고 병원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면 병원을 먼저 찾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경우에 먼저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이 센터인 것이다. 또한, 병원에 간다 해도 본인과 맞지 않는 의사를 만난다면 의사가 불친절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하는 감정 역시 들 수 있고, 상담을 병행하지 않는 병원에 간다면 상담하고 싶던 생각과는 다르게 약만 받아올 수도 있다. 책도 나왔듯이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으며 해당 병원이 상담을 길게 하는지 짧게 하는지 거의 없는 수준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확실히 상담을 할 수 있으며 보다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이 센터라고 할 수 있다. 센터는 뛰어넘고 병원부터 보고 싶다면 다음 주부터의 연재를 기다리시면 되고, 센터를 가기로 결정하신 분들은 아래 내용을 읽어주시면 된다.








센터를 방문했던 내 경험은 시간에 따라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센터에 가기 전, 첫 번째 상담, 두 번째 상담.




센터에 가기 전



센터에 가기 전의 나는 먼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해 검색으로 알아보고 사이트에 문의글을 남겼다. 후기들과 답변으로 센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1차 상담사와 상담, 2차 의사와 상담, 3차 병원 연계인 것을 알아냈다. 병의 상태가 가벼운 경우 1차와 2차 상담 모두 상담사와 하는 경우도 있고 상담으로만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으나, 나의 상태는 무거웠기에 위의 루트를 따르게 된다. 여러 후기에 따른 걱정과 병을 마주 보기에 겁난 나는 한 달 뒤에 센터에 연락을 하게 되는데, 당시 센터를 방문하려면 무조건 전화로 예약을 해야 했다. 방문 예약일은 1주~2주 사이에 잡혔다.




첫 번째 상담



들어갈까 말까 문 앞에서 고민하다 시간 맞춰 센터에 들어섰다. 혹시 누군가 들어가는 나를 보지 않을까, 나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역시 있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니 굉장히 따스한 분위기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내 앞의 상담이 길어져서 부드러운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차 한잔과 간식거리를 가져다주셨고 오기 전까지의 불안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상담실에 들어갔다. 상담실에는 작은 테이블에 1인용 소파가 마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많은 테스트지를 받으며 여유를 가지고 테스트하면 된다고 말씀하다. 내용이 정말 많기에 20~30분 정도 소요됐다. 그 결과를 기반으로 상담이 시작되었고 악명 높은 후기와는 다르게 다행히 매우 다정한 상담사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상담은 1시간 20분 정도 진행되었으며 테스트 결과가 매우 좋지 못하게 나와서 상담사분은 내 상태에 대해 굉장히 걱정을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담은 순조롭게 흘러갔지만 내 마음은 갈수록 불편해졌다. 상담사님은 굳이 내가 아프고 감추는 부분에 대해 물어봤고 문제에 대해 항상 잊으려고 노력하고 회피하던 당시의 내 성격상 굉장히 힘들었다.



나는 당시에 여러 가족 문제가 있어도 내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님이 물어봤을 때도 "근데... 저는 행복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상담사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상담사님은 정말 행복하신 게 맞냐고, 저였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 같은데,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너무 불편한 감정만 들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우울증이 다 나은 현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내가 정말 이상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새엄마는 언니를 때리고, 아빠는 새엄마를 때리는 와중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방어기제일 뿐이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상담이 끝나고 내 상태는 우울증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전문가의 입에서 확정된 결론을 들으니 시원섭섭했다. 상담사님은 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다음 주에는 의사 선생님과 만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 예약날짜를 잡고 센터를 나왔다.




두 번째 상담



첫 번째 상담이 끝나고 안 그래도 많이 꾸던 악몽을 더 자주 꾸게 됐다. 상담을 하는 자체가 너무 불편하고 마음이 안 좋아서 가기 싫었다. 마주하는 게 너무 고통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상담으로 내가 우울증이란 병에 걸린 걸 알게 됐기에 고치기 위해서 센터를 다시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지난주에 상담사님과 대화했던 내용을 다시 물어보셨다.



의사 선생님께서 내린 결론은 PTSD에 우울증이 겹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며,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계속적으로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는 질환이다. 2016년에 수능을 다시 공부하고 새로 입학한 대학의 신입생일 당시에, 과 선배에게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 강제로 술을 지나치게 마셨고, 필름이 끊겼다 돌아왔을 땐 그 선배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으며, 강력하게 거절 의사를 표명했는데도 사건은 발생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 않았고 그냥 선후배 사이로 계속 지내려고 했었다. 그럼에도 문득 그 일이 몇 번이고 생각나 소름이 끼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 문제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족문제와도 결이 같았다. 나만 괜찮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괜찮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너무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라서 엄청 힘든 상황인데도 이 정도밖에 안 나빠지게 나 자신이 막아준 거라고. 나는 정말 많은 사람 모두를, 심지어 나쁜 사람이어도 이해하려 한다고. 그리고 기분 좋게 만드려고 노력하고 그게 지금도 너무 잘 느껴진다고. 그래서 스스로를 지켜온 거라고. 나는 아직도 의사 선생님의 그때 그 말이 너무 위로가 된다.



상담은 내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약을 먹으며 병원을 다니는 것을 추천받으며 끝났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갔기 때문에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보고 내 병에 관해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내 후기였다. 위에 말했던 대로 좋지 못한 상담사를 만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스스로가 정신질환을 앓는지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주저 말고 센터에 연락을 취하길 권한다. 확신이 없는 당신에게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당신의 상태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판단해 준다. 그리고 상담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원래 그런 것이다. 상처를 제대로 아물게 하려면 헤집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어디 발붙이고 살 수가 있겠는가. 그럼 다음 시간에는 정신과를 찾게 된 이야기를 해보겠다.





사진: UnsplashGabrielle He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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