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우울할까. 우울하다는 감정 자체가 나쁜 걸까? 그렇지는 않다. 보통 이유 없는 우울을 느끼지 않는다. 최근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거나, 시험을 망쳤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잠 못 이룰 때 등의 상황에서 우울감을 느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편히 쉬고 있었는데 우울하던데요?"라고 하신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한 거라고 말씀드리겠다. 당신의 몸은 건강한 생활을 원하며, 기본값에서 벗어난 상황을 경험할 때 '우울'이라는 감정을 꺼내든다. 그건 바로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현재가 스트레스이기에 그것을 고쳐달라는 목소리다.
우울이 찾아오는 때면 뭔가 잘못됐다는 거구나, 하고 나를 괴롭히는 원인을 제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건 스트레스의 연속이며 그 스트레스를 댕강 없애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것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를 최대한으로 케어해 주는 것이다. 현재의 내 기분을 지속적으로 좋은 쪽으로 관리한다면 우울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가장 기본적인 케어는 7시간 이상 잘 자고, 하루에 두 끼 이상 밥을 먹고, 바깥으로 나가 30분 이상 햇볕을 쫴는 것이다. 이것만 꾸준히 실행한다면 가벼운 우울은 찾아올 엄두도 못 낼 테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는 샤워, 스트레칭,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등이 있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행동을 알아보고 시도한다면 어떤 것이든 좋다. 작은 우울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는 이 행위를 '고작'으로 만들어 버리는 녀석이 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잠깐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과 어떻게 다를까.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일단 우울 삽화를 경험했다는 뜻이 된다. 우울 삽화란 쉽게 말해 2주 이상의 지속적인 우울감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큰 우울이 찾아올 사건을 겪는다고 해도 대개 서너 일이 지나면 점차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간다. 하지만 우울 삽화를 겪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달리 긴 우울을 겪는다. 우울 삽화에 한 번 노출된 사람은 운이 좋다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몇 번이나 우울 삽화를 다시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때 우울이라는 감정이 점차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망가뜨려가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우울증까지 온 이후론 더 이상 우울은 감정이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의 문제에 의한 결과가 된다. 우울증이 걸린 사람은 위의 방법으로 우울을 싹 낫게 할 수 없다. 여러 행동 치료덕에 점차 나아질 순 있겠지만 팔이 부러졌는데 햇빛을 받는다고 팔이 싹 나을 리가 없는 것처럼 우울증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적절한 수면, 주기적인 음식 섭취, 일정한 야외 활동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과제이며, 우울증 상담 시에 가장 기초적으로 받게 되는 첫 번째 목표지만, 그것만으로 우울증을 나아지게 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학계에서 우울증이라는 병은 반복되는 우울한 생각이 신경 전달 물질까지 망가트렸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울증을 고치고 싶다면? 신경전달물질을 고치면 된다. 하지만 손가락 발가락 하나 겨우 통제하는 인간이 신경전달물질을 어떻게 고치겠나.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약물치료다. 고장 난 신경전달물질 대신 약으로 기본적인 양의 도파민, 세로토닌 등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약을 끊어버리면 애써 채워주고 있던 걸 다시 빼버리니 말짱 도루묵. 본인 판단만으로 갑자기 단약 한다면 그 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훨씬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일단 약으로 신경전달물질을 대신하며, 약이 없어도 스스로 몸이 다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할 수 있도록 상담과 행동이 따라야 한다. 약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다 약이 없어도 신경전달물질을 스스로, 원래만큼 생성해 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완치의 시점이다. 하지만 애써 좋아지는 듯하더라도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은 완치한듯해도 다시 재발하고 만다. 결국 원인이 문제다.
나의 원인에 대해서 말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부모의 이혼, 방치된 유년시절, 언니와 새엄마의 불화, 새엄마와 아빠의 불화, 불화를 중재하던 11살부터의 나, 착하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 같던 강박, 처음 내본 진로에 관한 의견은 묵살, 망친 수능, 뛰쳐나온 집, 반지하 속의 혼자가 된 나, …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내 삶.
많은 선생님들이 내 우울증의 시작을 20살로 봤다. 원인을 큰 덩어리로 분류하자면, 20살 이전의 가족관계와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내 삶에 반하는 나의 성격이다. 혼자 서울의 반지하 원룸에 자취하며 나는 우울했다. 도망치듯 편지만 남겨두고 집을 떠난 죄책감이 상당했고, 앞으로 혼자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겨우 최저시급 받는 주중 5일 떡볶이집 알바를 하고 나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만나는 사람은 거의 전무했고 하고 싶던 일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대문자 J에 완벽주의적인 사람이었지만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하나가 망가지니까 굴러 굴러 와장창 무너졌다. 나는, 나 혼자만도 먹여 살릴 수 없는 사람 같았다.
그 뒤에 나는 결국 본가로 돌아왔고 다시 수능을 공부해서 새로운 대학에 갔다. 사람들이랑 웃고 떠드는 건 너무 즐거웠지만 집에 오면 지나치게 외로웠다. 쉴 틈 없게 약속을 잡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았다. 하지만 4.5를 받고 전과 목표도 있던 나는 점차 수업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자는 횟수가 늘었다. 리포트에 열 올리다가도 한 번 무너지면 그 뒤에 그냥 출석조차 안 했다. 배움을 그토록 좋아하던 내가 학사경고를 받고 충격을 받았으나 그다음 학기도, 그다음 학기도 같았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밤새 무서워서 잠 못 들고, 잠에 들면 악몽을 꾸고, 또 일어나는 것도 무서워서 잠들면 깨지를 않고, 깨어나면 또 잠들기가 무서워서 두려움에 떨었다. 당시의 내 하루는 20시간의 잠과 4시간의 먹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친구들이 수업을 나가는 동안 잠깐 깨어나서 배달음식만 먹고 다시 자며 한 달 동안 10kg이 늘었는데도 나는 내가 우울증인지 몰랐다. 증상이 생긴 지 4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우울증인 걸 깨달은 것은 남자친구가 선물해 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덕분이었다. 나는 이 정도로 힘든 건 다들 겪는 거 아닌가 생각했고, 만약 이것이 우울증이라면 정신병자로 낙인찍히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자 (사과 말씀 먼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이런 사람도 병이라고? 싶었다. 이 정도밖에 안 힘든데 이게 병이면, 나는… 뭐지? 지난 4년이 스쳐 지나갔다. 이 책의 작가와 비교해 보니 상대적으로 굉장히 우울증 환자 그 자체처럼 보였다. 우울증이라는 게 참 상대적이고 떡볶이 작가님은 기분부전장애, 나는 주요 우울장애로 차이가 있지만 덕분에 깨닫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는데도 내가 4년이나 확신하지 못했던 건 정신과가 터부시되는 것 때문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과의 문턱은 내과만큼 낮아질 필요가 있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감기가 걸리면 내과에 가듯 정신적으로 괴로울 때 정신과를 찾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나의 우울의 원인과 증상을 밝히는 것은 솔직히 나의 치부와도 같지만 그럼에도 자세히 쓰는 이유는, 당신 역시 당신의 원인을 발견하길 바라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에 대해 낱낱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낱낱이 고쳐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은 왜 우울할까.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면, 그래도 사건들이 있었던 것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원체 우울해서 부모님과 거리가 있다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다거나, 본인의 성격이 스스로를 괴롭힌다거나. 당신이 왜 우울한지를 파는 것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괴롭다. 하지만 이왕 살아보기로 한 것, 죽지 않을 괴로움이면 참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주 작은 일들이라도 좋으니 아주 예전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길 바란다. 그래서 당신이 왜 우울한지 누가 묻는다면, TMI를 줄줄 남발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길 바란다. 적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