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부터 하자면 있다. 바로 내가 살아있는 증인이니까. 내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고? 심각성이란 상대적인 부분이라 해도, 하루에 약 30개의 약을 삼켜야 했으며, 보호병동에 가야 한다는 의사의 강력한 권고도 받은 적이 있다면... 나름 심각했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울증을 앓던 기간이 짧은 것 아니냐! 그것 역시 틀렸다. 2014년 여름부터 시작된 내 병은 2018년 여름에 깨닫고 겨울에 치료를 시작했으며, 완치는 2022년 봄이었다. 깨달았을 시점에 이미 4년이 지나있었으니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에 따르면 그 두 배인 8년 이후에나 완치가 될까 말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2026년이 지나서도 완치에 확신은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결국 2022년 4월 15일 '완치'라는 결과를 받아냈다. 당시의 나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불안감이라니, 기쁨을 잘못 쓰셨나 봐요. 아니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정말 '불안감'이었다.
우울증이란 게, 완치가 있냐고. 애초에 병을 앓고 있는 나조차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완치했다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몇 년째 약을 먹고 있다나, 십 년 넘게 병원을 다닌다나, 맞는 병원이 없어서 이번이 몇 번째 병원인지도 기억을 못 한다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의지'로 우울증을 이겨낸 연예인 같은 건 말도 안 됐다. 엄연한 병이었다. 독감을 의지로 이겨낼 수 있나. 발목이 부러진 것을 의지로 이겨낼 수 있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병 같은 건 없다. 나는 이 우울증이라는 병의 거대함에 잠식당하다가도 동시에 한없이 가볍게 여겨지는 '마음의 감기'라는 말에는 또 질색하게 된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선 동의한다. 그리고 그 말이 많은 이들의 우울증을 좀 더 가볍게 여길 수 있게 한 것도 맞다. 하지만 감기처럼 쉽게 낫는 병은 절대 아니었다. 이렇게 마음의 감기라는 말에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건, 우울증을 확신하게 된 초반에 '마음의 감기라잖아, 어쩌면 금방 지나갈 거야'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내가 어른거리기 때문일지도. 또한 똑같이 마음의 감기를 운운하며 내 병을 쉬이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당시에 내가 직면한 우울증이라는 병은, 거대하다가도 가볍다가도, 내 일이 된 순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며 내가 내린 결정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당뇨처럼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한다는 어디서 본 문장을 떠올리며, 언젠가 나을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내 병을 안고 살기로 했다. 그 병이 가볍던들 무겁던들 함께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였으니까.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복용약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약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괜찮았을 수도 있다. 내 상태가 더 좋지 못하게 됐다 해도 어쨌든 약으로 관리를 한단 얘기니까. 하지만 내게 더 두려움을 주었던 것은 약이 줄어갔을 때다. 상태가 호전을 보이는 상황에서 의사는 약의 용량을 줄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아간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 약을 줄여서도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정말 전혀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좋아지는 듯했다가 다시 처박히는 내 우울의 양상은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약을 줄여갔을 때, 나는 정말 괜찮았다. 그리고 약을 완전히 끊었을 때, 역시 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다신 병원을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괜찮았다.
괜찮은 게 두렵다는 점이 이해가 될까? 언제든 다시 괜찮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 놓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너무 기뻐했다가 다시 돌아간다면... 그 불안이 붕 뜨는 나를 붙잡았다. 다시금 괜찮지 않아 진 경험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의 괜찮음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이제는 생각한다. 그때 정말 괜찮았다고. 충분히 기뻐해도 됐다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기뻐하지 못했던 것에 온전히 내 판단만 들어있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울증에는 완치가 없다. 나는 몇 번이나 좋아지다 다시 나빠졌다. 우울증은 재발이 쉽다. 약을 시작하는 것보다 끊고 난 뒤가 더 어렵다. 온갖 말들이 내가 '완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했다. 부정적인 말들은 너무 많다. 불가능의 영역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내 뒤에서 열린 문을 놓치고 만다.
나는 이 글로 당신에게 '완치'라는 가능성이 새겨진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한다. 지금부터 내가 시작하려는 글은 여느 에세이처럼 괜찮아도 괜찮다느니, 너는 누워있어도 소중하다느니, 오늘 하루도 충분했다느니 따뜻하고 부드럽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저런 글들에 화도 났다. 물론 위안을 받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나를 비꼬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어도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내 삶은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한다. 다정한 말만 하는 그 사람들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이 글의 목적은 당신에게 완치라는 일이 유니콘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나도 완치할 수 있었고 나보다 더 심하든 심하지 않든 당신에게도 완치의 길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당연히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쉽게 얻어내는 것은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 말은 곧 어렵게 얻어낸 결실은 오랫동안 당신 곁에 남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당신의 병을 직면하고 깨나 갈 수 있다면 우리에게 '보통 사람만큼의 삶'은 보장되어 있다. 물론 이 글은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하지만 내 경험이 당신에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준다면, 아직 희망을 잡아볼 힘이 있다면, 그다음으로 넘어가도 좋지 않을까? 당신의 한걸음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