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장애 아닙니다
이번 회차가 올라가면 [나는 살기로 선택했다]에는 벌써 10개의 글이 올라가게 된다. 원래 14화와 부록 1개의 글을 쓰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연재해 본 기록 중 최장기록인데 모든 감사를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특히 라이킷을 눌러주거나 댓글을 쓰는 분들에게 돌리고 싶다. 그 따스한 반응에 누군가는 나의 글을 기다리는구나 생각하며 연재해 올 수 있었다. 정말 마음을 담아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병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은 공황장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공황장애가 가장 늦게 발현됐던 병이지만 가장 시시하게 지나갔다고 볼 수도 있다. 내 공황발작은 약하기도 했고 겨우 두 번에서 그치기도 했다. 이쯤에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문스러울 수 있다. 공황장애가 시시하게 지나가다니? 한 번 생기면 갈수록 심각하게 진행되는 병이 아니던가? 이쯤에서 공황장애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짧게 설명해 보겠다.
공황장애란?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 즉 공황발작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며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일컫는다.
공황장애의 재밌는 점이라고 하면 공항장애라고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부분이다. 연예인들이 자주 걸리는 병이기도 하고, 연예인들이 공항에 자주 가기 때문에… 공항에서 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항장애는 없고 공황장애가 맞는 말이다. 공황장애의 무서운 점은 바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예상치 못하게 발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갈수록 심각하게 진행되기가 쉽다. 어느 순간에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는 발작에 대한 두려움은 발작을 더 잦게, 더 무섭게 만든다. 그리고 위에 서술되어 있듯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에 겁먹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무서운 공황장애가 시시하게 지나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첫 번째 발작은 출근길에 생겨났다. 이때 나는 저번 퇴사 이후 다시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는 상태였다. 매장은 집과의 거리가 꽤 있는 편이라 버스를 한 번 타고 지하철로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날 역시 지루한 출근길을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며 가는 중이었다. 정말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이었는데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발작이 찾아왔다. 아까도 말했듯 공황장애의 무서운 점은 공황발작이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온다는 점에 있다. 순식간에 숨이 막혀와 호흡이 어려워졌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고 토할 것 같았다. 머리는 어지럽게 아파왔으며 몸이 달달 떨렸다. 몸에 오한도 들었다. 보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지하철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아직 내리려면 10분 넘게 남은 상태였다.
공황장애다.
일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쯤에 나는 스스로를 반 정신과 전문의로 부를 지경이었다. 우울증이 생긴 이후로 관련 질병을 꿰고 있던 덕이었다. 이번엔 공황발작으로 알고 있던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지금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게 공황발작이라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어 손잡이가 동아줄인 것처럼 꽉 붙들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살아보겠다며 열심히 심호흡을 하면서 수분의 시간이 지나자 상태는 점점 괜찮아졌고 미칠듯한 공포는 차츰 사라졌다.
지하철 역에 내려 매장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이제 하다 하다 공황장애까지 생기다니. 대체 왜? 그나마 지금은 출근길에 일어나서 망정이지 일하다 공황발작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첫 번째 발작 이후 나는 빠른 시일 내에 병원을 찾았다. 공황장애에 대해서 아는 바로는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따라서 병원에 찾아가 이런 증상이 이유도 없이 생겨났고 내 생각에는 공황장애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의사 선생님도 내 말에 동의하셨다. 그리고 발작이 시작될 것 같을 때 먹으라고 필요시 약을 추가해 주셨다.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난 날 그날 역시 출근하는 날이었다. 첫 발작 이후로 며칠간은 공황발작이 일어나지 않았고, 출근길에 좀 더 두려움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째 발작은 내 걱정대로 일하던 중에 일어났다. 나는 그전에 매장 사람들에게 우울증이 있고 우울증 약을 먹는 중이라고 말을 해뒀던 상태였다. 그리고 공황장애가 생겨난 후에는 혹시 내가 갑자기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도 했었다. 다행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일을 하던 중, 쟁반을 정리하다 말고 갑자기 미칠듯한 공포가 찾아왔다.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이 벌벌 떨리며 숨이 막혀왔다. 그 증상이었다. 나는 급하게 백룸 안으로 들어가 약을 찾아서 먹었다. 그러자 점차 숨이 쉬어지는 게 느껴졌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도, 어지럽게 몸을 흔드는 감각도 없었다. 웃기게도 여기서 나는 약의 효능에 대해 감탄했다. 밖으로 나가 의아하게 보는 파트너들에게 방금 좀 힘들었는데 약 먹고 괜찮아졌다며 편하게 웃어 보였다. 이게 내 시시한 공황장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로 공황발작은 내게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겨우 두 번의 발작에 공황장애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머쓱할 지경이지만 증상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빠르게 공황장애를 없앨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약에 대한 믿음과 섭취 후 증상이 나아짐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요시 약을 항상 챙겨 다녔기에 공황발작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순식간에 없앨 수 있다고 믿었고, 약을 먹어서 나아졌던 경험이 내 논리를 뒷받침해주었다.
여러모로 경험에 의한 통계가 중요한 부분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사실 나는 원체 잠귀가 밝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약을 싫어해 잘 먹지 않아 왔기 때문에 약이 잘 드는 몸이 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초등학생 때 감기약을 먹고 자다가 언니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1시간 넘게 듣지 못해서 119를 부르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길래 눈을 떴더니 소방관이었을 때의 머쓱함이란.
그래서 나는 수면제를 먹는 도중 깨어나지 못할까 걱정을 많이 했다. 약을 먹지 않았을 때도 알람소리를 아예 듣지 못해서 방전될 때까지 들으며 자거나 알람을 끈 기억이 전혀 없으면서 오후에 일어난 경우도 많았기에, 출근을 해야 했던 때에는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새벽 6시 반에 출근을 해야 할 때는 더 걱정이 컸다. 그렇게 걱정을 하며 출근했지만 다행히도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못 들으면 어쩌지 내내 걱정이었다. 내 걱정에 대해 선생님은 지금까지 출근하면서 그런 일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까지는 어떻게 됐어도 예전에 이래왔기 때문에 앞으로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선생님은 본인 생각에 나는 앞으로도 알람을 못 듣거나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어날 것 같다고 덧붙이며, 그럼에도 걱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알람을 듣고 일어난 날이 늘어날수록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일어난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대로 나는 2년 11개월간 일하며 딱 3번밖에 지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알람이 울렸는데도 못 깨어나 지각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 나는 내가 겨우 30분을 자도 출근하기 위해 일어날 사람이라는 걸 안다. 대신 예전의 그 둔감함은 없고 예민하며 작은 소리에도 깨는 쪽으로 변했지만 모든 변화에 마냥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조금 예민하더라도 못 일어날까 걱정 없는 이 상태에 나는 만족한다.
공황장애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하기에는 매우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얕게라도 겪은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꼭 병원을 가고 약을 믿으라는 것이다. 내가 매번 알람을 듣고 잘 일어난 경험이 쌓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커졌던 것처럼, 당신이 발작을 겪을 때 약을 먹고 안정되는 경험이 쌓인다면 앞으로 몇 번의 공황발작을 더 겪든 다시 안정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비단 이 문제뿐만 아니라 치료가 되고 싶다면 약이든, 의사든 전적으로 믿고 따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더 빠른 속도로 나아질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공황발작 같은 건 겪지 않을 수 있다. 침대 속에 있는 날들도 없앨 수 있다. 스스로의 경험과 약에 대한 신뢰로 공황장애 같지도 않은 우스운 공황장애를 겪은 나처럼 당신의 병도 우습게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당신에게도 얼른 지나간 일처럼 말하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
사진: Unsplash의Josh H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