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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l 14. 2019

쫄쫄이를 입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날 이후, 나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알아차리기 훨씬 전부터 다리가 너무 저리고 누워있어도 허리와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오랜 연애를 유지할 때는 아픈 것도 사랑하는 이의 관심과 걱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되었으므로, 굳이 치료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홀로서기를 선택한 후부터 이건 꽤 심각하며,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자세가 구부정해서 그런 거려니 하고 집 근처 필라테스 수업을 끊었다. 수업을 듣던 중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기위해 래더 베럴에서 천천히 아래로 몸을 숙이는데, 허리를 삐끗했다. 허리를 숙인 상태로 일어서질 못해서 나름의 우리동네 번화가에서,  쫄쫄이를 입고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센 진통제와 몇 시간을 보낸 후 외과 외래 진료를 예약하고 나서야 나는 응급실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나도 이런 내 몸뚱어리가 어이가 없었다.

이것이 그날, 쫄쫄이를 입고 응급실에 실려가게 한 레더베럴이다. 이것만 보면 그날의 고통보다 컸던 쪽팔림이 생각난다.



- 저번에 진통제 센 거 드린 건데… 운동 하세요. 격한 운동 말고.

 외래 진료를 세 번째 받던 날 의사 선생님께서는 허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을 권하시기 위해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으나, 나의 응급실 사연을 들으시고는 하루만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셨다.


- 원래 건강한 디스크의 색깔은 이런 허연 색이에요. 안 좋을수록 까만색에 가까운데, 봐요, 시꺼멓죠?


튀어나온 디스크가 왼쪽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계속 다리가 저리다 못해 아프고 허리를 쉽게 숙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 주사 맞으실래요? 신경주사. 마침 우리 병원에 주사를 아주 기가 막히게 놓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신경주사가 팔뚝이나 엉덩이 주사 정도인 줄 알았던 나는, ‘주사 치고 꽤 비싸네? 세 방이라서 그런가?’라는 생각과 함께 검사결과가 나오던 그 날, 마침 담당 교수님께서 시간이 괜찮다고 하셔서 바로 주사를 맞겠다고 했다. 등이 뻥 뚫린 수술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순간 알았다. 아, 이거 보통 주사가 아니구나. 수술방으로 들어가기 전 사인을 했고, 그날 내 등에는 작은 구멍 모양의 딱지 세 개가 생겼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신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뒤로 그 사건이 충격으로 남아 일 년 동안 재활을 목적으로 필라테스를 했다. 허리를 숙이거나 뒤로 젖힐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같이 멋진 동작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필라테스 강사님과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진도를 나갔다. 그리고 이제 내 허리는 아프지 않다.



사실 그때, 망가진 것은 나의 허리뿐만이 아니었다.


 오랜 연애의 안 좋은 끝과 예전의 트라우마까지 더해져 찾아온 우울증, 거기에 계속되는 허리의 고통까지 더해져 나의 마음은, 어쩌면 나의 허리보다 더, 망가져 있던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몸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한 학급의 담임 교사로서, 큰딸로서, 좋은 친구의 역할을 다해야 했던 나는 고통을 다른 것으로 덮기에 바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술이었다. 친구들과 술 먹고 신나게 떠들다 보면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으니까.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농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음날의 자괴감은 미친 듯이 몰려왔고 고통은 두 배가 되었다.


 나의 심각한 감정 상태에 눈치를 채신 엄마께서는 그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지금 감정은 감기 같은 거라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언제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이 엄마와 아빠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와 더 많은 대화를 하려고 하셨다. 함께 TV를 보다가 뜬금없이 우는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셨다. 방에 처박혀 밥을 먹으라는 외침에 대답하지 않는 큰딸을 억지로 앉히지 않으셨다. 동생은 그런 나에게 말없이 방에서 혼자 읽을 수 있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그런 보살핌 속에서, 나는 남의 시선 따위 상관없이 열심히 울고 웃으며 감정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우울하면 인지능력이 떨어져 글을 잘 읽지 못한다. 그래서 내 동생은 나에게 만화책을 선물했고,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이때부터 감정과 관련된 것을 닥치는대로 읽고, 쓰기 시작했다.


 감정 근육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감정도 몸의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튼튼해진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실제로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은 이때였던 것 같다. 이전까지 나는 기쁜 감정도, 슬픈 감정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괜찮은 인간”이었다. 아주 기뻐도 애써, 아주 슬프거나 화가 나도 애써 “괜찮은 사람”. 사실 그 괜찮은 사람의 속은 아주 흐물흐물해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감정들만 남아있었다. 그런 사람이 그때부터 감정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받으며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허리처럼 아프면 병원에 갔다. 슬프면 제대로 울어버리고, 기쁘면 맘껏 웃기 시작했다. 죽을 것같이 아픈 사람에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내 마음은 아프지 않다.


 쫄쫄이를 입고 실려갔던 그날 이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필라테스를 하며 온갖 근육을 써댄 내 몸에는 튼튼한 허리 근육이 있다. 덕분에 허리를 비트는 요가 동작도 할 수 있고, 한 시간 내내 러닝을 할 수도 있다. 아마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약을 먹지 않았을까, 혹은 “어린 나이에 수술을 좀 그런데…”라고 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매달려 제발 수술을 시켜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기를 겪은 나에겐 아직 튼튼하다고 말하긴 이르지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감정 근육도 있다.

근육은 한 번 써보기 시작하면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나의 감정 근육도 그런 상태인데, 이제는 슬픈 일이 생기면 오로지 나를 위해 이 감정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 다른 근육과 뼈가 다치지 않을만큼 조금씩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 그 격동의 시간과 그 시간을 기꺼이 함께 겪어준 가족의 가르침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운동하고, 울기도 하며, 맘껏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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