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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20. 2019

남미여행 후,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남미 여행기가 아닌, 남미 여행 이후의 삶 이야기.

작년 여름에 남미를 다녀왔다.

친한 언니가 “남미 갈 사람?” 할 때 손을 들어서 다녀왔다. 당시만 해도 여행에 무지했던 나는, 남미여행에 대한 찬사가 이렇게나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녀와서야 알았다. 사실 우리는 남미여행을 참 편하게 한 편이다. 심지어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고산 증세도 미미했던 편이라, 함께 한 친구들보다 덜 고통스러웠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이 정말 드럽게 추운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를 하다말고 욕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고난이 없었던, 안전하고 평범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남미에 대해서 내가 할 이야기는, 남미 여행기가 아니라, 남미여행 이후의 이야기다.     

사실 그때는 증말 드럽게(?) 추웠던 것 같은데, 이렇게나 아름다웠다. 사진을 보니 용서가 된다.



 특이하게도 남미를 다녀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사막과 바다, 소금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던 기억보다 왕복 60시간에 가까운 비행시간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시간이 만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한참 멀었다. 다운 받은 영화를 다 봤는데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e-book으로 다운 받았지만 녹초가 된 몸과 눈으로는 도저히 집중되지 않았다. 영겁의 시간 같았다.

 본래 나는 엄청난 수다쟁이다. 그런 내가 장시간의 비행 때문에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좀이 쑤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침묵을 깰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함께 여행한 친구들도 다른 여행객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의 여행과 장시간의 비행의 콜라보때문에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이 수다쟁이가 떠들 곳은 휴대전화의 메모장밖에 없었다. 나는 그대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일기를 한 시간이 넘도록 쓰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그 사람이 나에게 보인 시그널이 ‘우리 관계는 더는 힘들다.’라고 얘기한다는 걸 알았다. 그걸 무시해왔던 것도, 정리하지 못한 것도 나의 선택임을 인정하고 한국에 도착하면 깔끔하게 끝을 보리라, 최종 선택을 했다.     

 그다음 생각은 첫 장기여행을 통해 알게 된 나의 무의식적인 모습들이었다. 편한 친구들과 있으면 오히려 말수가 줄어드는 것, 의외로 험한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타인에게 정말 관심이 없다는 것, 그만큼 타인에게도 기대도 없다는 것, 공상세계가 넓다는 것. 모두 남미여행을 되돌아보는 이 시간 동안 깨달은 것이다. 나에 대해 너무나도 중요한 정보였지만, 이때 정리하지 않았다면, 역시나 넘어갔을 것들. 이것들을 정리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데?



 마지막 생각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데?] 였다. 이번 여행은 도피 여행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까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회의감이 들었고, 좋은 선생이 될 자신이 없었다. 좋아하는 남자는 앞에서 얘기했듯 관계가 성사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가장 심각했던 것은 그 당시의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싫었다.      


 내가 왜 싫지?


 일기 쓰는 것을 멈추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생각에 다시 잠겼다. 겉으로 보기엔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는 삶이었으나, 딱 거기까지. 그대로 계속 살 자신이 없었다. 내 삶에는 과거의 영광과 상처만 있을 뿐, 현재와 미래에 의미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거울 속의 내 꼬라지를 보고 알았다. 갈색의 염색 모 사이로 드러난 거뭇한 진짜 머리색이 괴상하게 느껴졌다. 본래 태어난 대로의 나와 애써 만들어낸 내가 뒤섞여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좀 전에 가졌던 심란한 생각에 대한 답이 보였다.

 8년 동안의 갈색 머리.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갈색 머리는 타인의 입에서 나온 “갈색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린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아주 까만 머리색을 가지고 있으나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어울린다.”라고 얘기했기에,  8년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을 해주며 밝은 갈색 머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남미를 여행하는 도중에는 갈색으로 염색할 수가 없었기에, 밝은 갈색 머리와 선명하게 대조되는 거뭇한 진짜 머리색을 보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알았다. 내 삶이 과거에 묶여 있던 이유는 누군가의 시선과 판단 때문이었구나. 이미 끝난 관계들이 남긴 것, 친구들의 시선, 이성의 평가,  가족들의 기대,  스쳐 지나간 말들,  심지어 나에 대한 칭찬까지. 나는 그것들에 얽매여 나아가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는 잘 알면서도, 나만 알 수 있는, 내가 꼭 알아야 할 ‘인간 이솔의’ 기본적인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한국에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인 우리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랐을 때, 나는 더 마음대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뜬금없이 알고 지내던 작가 친구에게 문자를 남겼다.

 [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

 누구도 기대하지 않지만,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일을 이뤄내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에 멋진 내가 되고 싶었다. 항상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들. ‘작가’였다. 그래서 얘기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 말을 뱉고 나니 현재와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이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들었다. 기쁘다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계속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첨엔 8년만에 보는 검은 머리의 내가 많이 어색했다. 이제는 본래 머리색의 내가 가장 익숙하다.

 여독이 가실 때쯤, 문을 연 미용실 중 한가해 보이는 곳 한 곳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그날, 그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해달라고 했다. 전남친이 자르지 말라던 긴 머리를, 엄마가 너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그 갈색의 머리를, 좋아하는 스타일의 깜장 일자 단발로 잘라 달라고 했다. 비로소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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