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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06. 2020

연애를 큰일로 만들지 말라.

 2019년 4월의 어느 날, 나에게 ‘인생 000’이라고는 우리 집 근처 ‘인생 돈가스’(실제 돈가스집 이름이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깨졌다. 한창 작가 병에 빠져있던 내가, 봐야 하는 책은 안 보고, 핫트랙스에서 펭귄 수첩을 살지 곰 수첩을 살지 고민하던 중, 그 근처에 진열된 류시화 작가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시선을 뺏긴 것이다. 그 길로 이 책은 이솔 인생 책이 된다.      


 제목부터 멋지지 않은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한창 내 인생은 스펙터클의 끝을 달리는 우울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두서없는 감성 글만 싸지르던 나는 이 책을 홀리듯이 샀다. 그러고는 이런 제목의 글에 심장을 얻어맞고 뻗는다.

<그것을 큰일로 만들지 말라.>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설레발 장이’ 이자, ‘최고의 낙담(落膽)가’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강아지가 “산책 갈까?”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미친 듯이 설레 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거나 화내며 미친 듯이 우울함을 표출한다. 이와 같은 특성은 사회인의 프레임을 씌우면 ‘어느 정도 티 내지 않기’ 스킬이 가능하지만, 연애의 프레임을 씌우면 그것마저 불가능해질 정도로 설레발과 우울이 나의 뇌를 지배한다.     


 나는 연애를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큰일, 즉 이벤트처럼 생각한 것 같다.

대부분의 이벤트는 엄청난 감동이 몰려옴과 동시에 금방 끝이 난다. 인생의 이벤트라고 생각한 내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지루한 일상에 찾아온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큰일로 만들고는 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설레발을 침과 동시에 제멋대로 미래를 생각하고 의미부여를 했다.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난 실망감과 낙담을 표했던 나의 연애. 내가 쓰면서도 이랬던 내가 부담스러운데, 당연히 그때의 내 연애는 잘 될 리가 없었다.     


 ‘그것을 큰일로 만들지 말라.’는 제목과 내용이 삶의 모토가 될 정도로 와 닿은 것은, 책을 다섯 번째 읽었을 때였고, 열정을 쏟았던 연애가 허무할 정도로 갑자기 끝났을 때였다. 그때도 나는 화병에 걸려 앞과 뒤로 먹은 음식물을 쏟아내던 중이었고, 누가 말만 걸어도 울어대며 분노했다.

 “이번엔 정말 신중하게 시작했어. 정말 좋아해서 잘하려고 했고. 아니 잘했잖아. 근데 왜 이러냐고. 나 이제 연애 어떻게 하냐고!!”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이야기했다.

그것을 큰일로 만들지 말라. 문제와 화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문제는 작아지고 우리는 커진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별과 화해하기로 했다. 솔직히 연애 어떻게 하냐는 절규는 뻥이었고, 연애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앞으로 연애하는 동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연애는 사실 축복이자 동시에 고난이라는 것도. 그러자 이번엔 일주일 만에 분노가 사그라졌고 더는 그를 욕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 중 하나였으므로.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연애를 너무 큰일로 만들고 있었다. 어떤 일을 큰일로 만든 이는 온종일 그 일에 대한 생각에 휩싸인다. 그렇게 되면 큰 기대를 하다가도 우리의 연애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불안하고, 초조함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나에게 연애는 그런 것이었다. 설레면서도 불안하고 초조한 것.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애는 현실이었기에, 설렘보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더 커지는 것이었다. 한 남자와 헤어지면, 으레 나는 그를 원망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으나,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고 나니, 그와의 이별에는 어쩌면 연애를 부담스러운 ‘큰일’로 만들어버린 나의 책임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 부담감을 감내하다 못 견디고 이별을 말했을 그들에게도 ‘수고했다.’ 이야기하며 화해하고 싶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화해하면 그 일은 쉽게 잊힌다. 하루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전에 만났던 아무개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말을 하던 친구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닫았다. 나는 너무나 미안해하는 그 친구에게 “000이 볼드모트냐. 괜찮아.”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그 000에 들어갈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괜찮다는 말 대신,

 “와 씨, 나 걔 이름 까먹었어. 미친.”

이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그제야 안도했고, 나 역시 지난 연애에 얽매이지 않는 쿨한 언니의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큰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 둘째가라면 서러운 커피 중독자인 내가 점심을 먹고 본능적으로 찾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때가 되면 찾게 되는 것 그러나 건강을 위협한다면 아쉽지만 한 번쯤은 쉬어가도 좋을, 그런 일상 같은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연애는 어쩌다 한 번 찾아온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야 한다.     


 류시화 작가님은 이 글의 끝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 (생략) 그 조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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