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정말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줄 알았다.
어른들 말로는, 누가 봐도 나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다고 한다. 1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차려진 엄마의 아침상과 늦은 새벽, 코를 드렁드렁 골며 졸다가 독서실을 마치고 돌아온 딸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던 아빠. 나의 유년기를 사랑으로 꽉 채워주던 고모와 이모할머니, 거기에 항상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나는 정말 온 가족의 사랑으로 컸다.
그러니 당연히 바깥사람들도 나를 사랑할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좋아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으며 오히려 그 누구에게도 인기가 없었다.(그리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서로 마음이 맞더라도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모습과는 다른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러했다. 독립하기 전, 19년 동안 가족은 나에게 딱 맞는 사랑을 조건 없이 주었기에 나는 어이없게도 내 몸에 꼭 맞는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 필자의 헛된 희망의 불씨를 더 크게 키운 이가 이었으니, 그는 필자가 고1이었을 때의 남자 친구였다. 우린 3년 넘게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K-입시의 노예였던 우리는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 자습을 하곤 했다. 주말 점심은 항상 나가서 먹거나 부모님이 싸주신 도시락을 먹어야 했는데, 하루는 그가 나의 소울푸드에 대해 물었다.
“너는 떡볶이가 그렇게도 좋냐”
“엄청 좋지. 떡볶이에 뚱바(뚱뚱한 바나나우유)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나 떡볶이 만들 줄 안다.”
“진짜? 그짓부렁 말아라.”
정말이었다. 17살의 그는 정말 나를 위해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어왔다. 아침 일찍 만들어져서 나를 위해 점심까지 기다린 떡볶이는 퉁퉁 불다 못해 죽이 되어있었지만, 우린 그걸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때 그 떡볶이는 나를 착각시키기에 충분했다. 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떡볶이 같은 사랑을 주겠지. 내가 그걸 좋아하니까. 날 사랑한다면 분명히 알 거야. 그리고 그 자식은 돌연 교실 앞문에서 “헤어지자.” 말하더니, 더 예쁘고 키 큰 여자애랑 사귀었다.
내 연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을 만난 X에게도 그런 사랑을 원했다. 우린 처음부터 서로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만났다. 소개팅 중독이었던 여자와 제대 후 여자를 만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남자가 짝을 이루었다. 우린 환상적이고 환장하는 궁합의 커플이었다.
친구들 말론, 겉으로 보기에 내가 ‘사랑받는 여자 친구’로 보였다고 한다. 아니, 티가 너무 났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여기 있는 여자들 중에 네가 젤 예뻐.”멘트와 같은 열렬한 사랑을 줬다. 하지만 나는 그런 류의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스테이크가 맛있는 식당이 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나를 데려갔는데, 나는 살보다 내장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애교 섞인 말에 미지근한 미소로 답하고, 고급 스테이크에 곱창이 먹고 싶다는 여자 친구. 그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그냥 뜨뜻미지근한 상태로 그의 옆에 있어줬다. 그가 필요한 건 사다 줬고, 취업준비로 바쁘다길래 주말에도 그의 학교 도서관이나 근처 카페에서 옆에 앉아있었다. 내 저녁과 주말 그리고 지갑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계속 사랑이 부족하다고 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냐 물었다. 나는 끝까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론은 당연히 그와 헤어졌다. 참 쓰라리게 헤어지긴 했지만 지금의 나는 자신 있게 그와 만난 덕분에 10대에 멈춰있던 내 정신연령이 제 나이에 맞게 익을 수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멋대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가족의 사랑 역시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사랑해준 것’인데 나는 그들의 배에서 태어나 아주 운이 좋게도 그들의 사랑이 꼭 맞은 것이고, 떡볶이 첫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운이 좋게 불어 터진 수제 떡볶이가 나의 사랑 취향을 저격한 것일 뿐 그 역시나 그가 좋을 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X의 사랑은 객관적으로 예쁜 것이었지만 금속 알레르기처럼 닿는 순간 서서히 ‘이건 네 몸에 안 맞아’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X는 나의 고딩때 전남친과 마찬가지로, 나와 헤어지자마자 다른 여자를 만났다. 나와 만나는 동안 갈아탈 준비를 대차게 한 듯했다. 불어터진 떡볶이가 다시 생각나면서 '유난한 놈은 믿을게 못된다'는 엄마의 뼈아픈 조언을 아로새겼다. 헤어지면서 나쁜 욕, 심한 욕, 붙일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했는데 이제는 조금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나도 그와 만나며 예쁜 알러지 같은 연애 덕분에 온갖 질병을 앓았지만, 결정적으로 X는 취업준비와 지랄 맞고 무뚝뚝한 여자 친구 덕분에 이마 위 M자가 더욱 깊어졌기에. 그걸로 되었다. 그도 그가 하는 사랑에 꼭 맞는 짝을 만나 M자가 더욱 깊어지지 않길. 넓은 아량도 베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