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에리히 프롬에게 반기를 들어본다
헤드폰이 사고 싶어 졌다.
이유는 딱히 없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에어 팟보다 잘 구현해주는 음향기기가 필요했고,
때마침 카드 포인트가 100만 정도 모여 있었기에 헤드폰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카드 포인트 몰에 들어가 보니 40만 원 정도의 가격에 소니 헤드폰이 있었다.
가격도 적당했고, 상품평도 무난 무난 했다. 유튜브 리뷰를 몇 개 찾아보니 '가성비 헤드폰'. '무난한 헤드폰', '입문용 헤드폰' 등등 듣기만 해도 상품의 질과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수식어가 많았다.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얹어서 '가성비'라는 이름을 털 수 있는 상품을 바라게 되었다.
후보군은 60만 원 대 슈어, 젠하이저, 뱅 앤 올룹슨, 보스 등등이었다. 음향기기 문외한들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브랜드일 테다. 여러 비교 영상들을 보던 와중에 한 단계 높은 급의 헤드폰이 들어왔다. 가격은 110만 원, 사악한 가격대였다. 그러나 가격의 사악함을 상쇄할 유려한 디자인과 전문가들의 호평은 내 맘을 흔들기 충분했고, 나는 오늘 오전 바로 압구정 청음샵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구매하기에 앞서 정말 꼼꼼하게 타 브랜드의 헤드폰들을 청음하고 비교해보았다. 디자인, 브랜드, 착용감, 음질, 음색, 배터리 성능, 노이즈 캔슬링 등등... 아무리 꼼꼼히 비교해 보아도 가격이 거진 2배 정도 비싼 본래 목표했던 헤드폰의 압승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격 책정이 이토록 정직했던가 하면서 경외감(?)까지 들었다.
깔끔하게 일시불로 카드를 긁고 같이 온 친동생과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마시며 언박싱을 하는데 그 자태에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천박해 보일지 모르나, 너무 행복했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절정 부분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나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오는 자기 충만감,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동적인 말을 들을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었다.
혹자는 이러한 감정을 본인의 무가치한 외부적 상황, 물질의 소유로 인해 일어나는 일시적이고 천박한 만족감에 그치지 않는다고 폄하할지도 모른다. 물론 에리히 프롬은 소유 자체를 비난했기보다는 소유와 존재의 역전이 팽배한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러한 사실을 곡해해서 소유 및 소비의 주체를 무작정 비난하는 행태가 만연한 것 또한 작금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소유를 통해 오는 행복도 행복의 일종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오랫동안 바라던 물건을 드디어 손에 넣었을 때,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 느끼는 충만함, 안정, 기쁨이 행복이 아니면 어떤 감정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겠는가?
감정의 고결함을 따지는 건 결국 인문적인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서열 매기기일 뿐, 감정은 그냥 호르몬을 통해 뇌에 특정한 반응을 촉진하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가 무엇이 고결하다, 무엇은 열등하다 매기는 행위와 상관없이 감정은 존재하고, 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뿐이다.
내가 정직하게 번 돈(물론 포인트는 부수적인 개념이긴 하지만)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서 스스로 보상하는 행위는 노력-보상으로 이어지는 간결하고 지극히 이성적인 과정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쁜 감정은 결코 천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독자분들 모두 열심히 벌어서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즐겁게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