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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Nov 16. 2024

빨간 립스틱을 바르겠어요.

뮤지컬 시카고에서 찾은 반항미

뉴욕에서 뮤지컬을 즐기는 꿀팁을 묻는다면, 가장 싸게 보는 것이다. 물론 가성비를 경제적인 추구미로 생각하는 사람에 한정해서 말이다. 15만 원이 훌쩍 넘는 티켓값이 정말 최선의 가격인지 오랫동안 검색했다. 그 결과, 절반 가격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도박 정신이 필요했다. 바로 러시티켓을 노리는 것이다. 당일 취소되거나 구석이라 팔리지 않는 자리를 공연 당일 아침에 절반 가격으로 파는 것을 러시티켓이라 한다. 대신, 선착순이라 티켓이 없을 수도 있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못 보는 건, 치명적인 결점이다. 뉴욕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파리에서 에펠탑을, 서울에서 경복궁을 보지 않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움직이자.’     


티켓부스는 아침 8시 40분부터 열린다. 블로그 후기에는 아침 7시 30분에도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고 했다. 그 사람들보다 더 간절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4시간 쪽잠 자고 일어나 달려가니 아침 7시에 도착했다. 당연히, 1등이었다. 블로그와는 달리, 아주 오랫동안 1등이었다.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스멀스멀 줄 서기 시작했다. 히스패닉 청소 아주머니는 본인보다 일찍 도착해서 부스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1시간 40분 동안 하품을 143번 정도 한 것 같다.      


8시 40분이 되자마자, 티켓 부스의 커튼이 올라갔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준비한 영어로 러시티켓을 구매했다. 직원인 조니가 티켓을 건네며, 여분의 자리 중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줬다며 ‘러키’라 말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자리까지 낚아챈 내가 여행 유튜버 못지않은 ‘프로 여행자’ 같아 어깨가 하늘에 걸렸다. 공연 시작인 저녁 8시까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몽롱한 기분으로 다녀야 했다는 것만 빼고는 성공적인 티켓팅이었다.     


화장해도 가려지지 않는 다크서클과 맞바꾼 티켓은 뮤지컬 <시카고>였다. 브로드웨이에서 최장 공연 기간을 자랑하는 <시카고>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종횡무진이다. 브로드웨이를 지키는 안방마님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의 강렬한 포스터에 끌려, 다른 뮤지컬은 생각지도 않았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배우가 부르는 퇴폐적인 재즈를 라이브로 듣고 싶었다. 욕망이 가득한 공격적인 여성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다. 아련한 여성은 일상을 뚫고 나온 뉴욕에서의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시카고>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는 미국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면서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자아를 탐색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주인공인 벨마와 록시가 이 시기의 여성을 대변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졌다.      



저녁 8시가 되고, 공연장에 도착해 자리를 안내받았다. 티켓 판매원인 조니의 말과는 다르게, 자리 안내원은 나를 구석으로 끝없이 데리고 갔다. 이 정도면, 공연을 무리 없이 볼 수 있겠다는 자리를 지나쳐 왼쪽 맨 끝에 자리를 안내받았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나 티켓을 확인했지만, 정확히 내 자리였다. 무대는 내 시선에서 왼쪽 끝이 잘렸다. 나는 배우들이 왼쪽에서 많은 연기를 해주지 않기만을 빌었다. 공연은 미니멀의 정수였다. 최소한의 무대장치와 단벌의 의상. 이 외에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채워졌다. 깔끔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무대였다.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이 장난치는 애드리브 장면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나마저도 웃게 만들었다. 다행히 전반적인 내용은 여행 전, 영화 <시카고>를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대사 전체를 알아듣지 못해도, 어떤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의 웃음에 살포시 숟가락 얹는 내 모습이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웠다.      


뮤지컬이 끝나고, 공연장 근처를 배회할 만큼 여운이 길었다. 공연을 볼 때에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자체에 매료되었다면, 끝나고는 다른 여운이 있었다. 여죄수들이 자신의 남편과 애인을 왜 죽였는지 노래하는 ‘cell block tango’ 장면은 해소시켜 주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했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사랑한다는 ‘All that jazz’ 가사도 오래도록 흥얼거렸다. 끈적하지만 과격한 배우들의 춤은 관능적이기보다는 봉인 해제의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거울 앞에 앉아 가장 진한 립스틱을 꺼냈다. 록시와 벨마의 재즈 바이브를 따라 하기 위함이었다. 가장 진한 빨간색이라 해도, 록시와 벨마에 비하면 바르다 만 것처럼 옅었다. 그래도 표정만큼은 다잡아 본다. 없는 남자를 잡아먹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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