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아웃과 911 메모리얼 파크의 상관관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봤던 날, 오열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눈물과 콧물로 축축해진 옷소매가 시간이 지나 마르면서 하얀 얼룩을 남겼다. 영화를 본 건지, 심리상담을 받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애써 숨겨둔 은밀한 감정을 거울로 비추듯 보여주는 영화였다. 온 힘을 다해 숨기기 바쁜 감정은 슬픔이다. 슬프면 행복도 오염될까 봐, 슬프다가도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로 확대될까 봐, 나의 슬픔이 누군가에게 전염될까 봐 등 온갖 이유로 슬픔을 뒷전으로 미뤘다. 행복만 내세운 얼굴에 영혼 없는 미소를 짓느라 바닥난 에너지를 긁어 쓴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는 내내, 훌쩍이는 소리가 상영관에 들쭉날쭉 들렸다. 아무래도 이런 감정 습관은 나만 가진 게 아닌 듯했다. 나에게서 타인들로 점철되어, 사회 전체가 슬픔을 모른 척, 잊으려 한다.
숙소를 맨해튼에서 퀸스로 옮기는 날이었다. 지하철로 40분이 걸리지만, 묵직한 캐리어 때문에 체감 시간은 2시간이었다. 심지어 날씨도 하늘을 툭 찌르면 비가 쏟아질 것 같이, 꿉꿉하고 뿌연 안개로 흐렸다. 시끌벅적하고 매섭게 치솟은 빌딩이 많은 맨해튼과 다르게, 퀸스는 아기자기한 주택과 구멍가게들이 많았다. 달리 보면, 범죄의 무대가 되기 딱 적합할 정도로 골목이 한산하고 어두웠다. 지하철역에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 내내, 누가 캐리어를 훔쳐가지 않을까 손에 힘을 꽉 주고 걸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고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모든 긴장과 짐을 옮겨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지면서 몸이 풀어졌다. 침대가 한숨 자고 가라고 유혹했다. 잠깐 고민했지만, 다시 신발을 신고 숙소를 나섰다. 911 메모리얼 파크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짐을 옮길 때는 성가셨던 날씨가 911메모리얼파크(이하 911파크)에서는 아주 조화로웠다. 911파크에 가까워질수록 물이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와 함께, 뿌연 안개가 밀집되어 떠다녔다. 날씨 때문인지, 911파크만의 고유한 분위기 때문인지 사람들도 가라앉아있었다. 폭포 소리를 따라가 보면, 4,000m²의 네모난 연못 2개가 추모공원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그대로 보존해서 만든 연못이었다. 연못이라 하면, 물로 꽉 채워진 풍경을 생각하겠지만, 추모공원의 연못은 다르다. 비어 있다. 빈 연못 한가운데 더 깊은 구멍으로 물이 떨어지는 게 전부다. 그리고 테두리에는 3,000명의 희생자 이름이 쓰여있다. 연못 한 바퀴를 돌며, 긴 이름들을 손으로 만져도 보고,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무너진 공간을 비워둠으로써 원하는 만큼, 뉴요커들은 희생자를 그리워하며, 일상을 살아내는 중이었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사는 대구에도 작은 추모공간이 있다. 1호선 중앙로역에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을 일부 보존하고 있다. 오렌지색 가벽으로 가려진 공간에는 새카맣게 그을진 벽에 이름과 메시지들이 쓰여 있다. 희생자들이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 마지막 힘으로 수놓은 글씨들이다.
참사 장소에 추모공간을 만드는 것만큼, 참사를 기억하기 쉬운 방법은 없다. 다만, 일상 자체인 911메모리얼파크와는 달리, 대구 지하철 참사는 일상에 은밀하게 숨어있다. 지하철역을 수없이 오갔지만, 설치된 지 한참 흘러서야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참사 추모공원은 ‘추모’라는 명칭을 빼놓은 채로, ‘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팔공산에 조성되었다. 인근 상인들이 추모공원을 혐오한다는 게 이유였다. 추모와 혐오가 함께 붙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하철 참사 외에도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모두 추모공간을 축소하거나, 자리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옮겨지고 있다. 사회는 참사를 지우고, 지워진 흔적을 따라다니며 다시 그리는 유가족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인사이드 아웃>에 조이와 슬픔이처럼.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의 행복을 담당하는 조이가 슬픔이를 배제한다.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 없다. 상처받거나, 화났을 때도 행복을 유지하려다 라일리는 되려 우울해진다. 배제된 슬픔이 조이와 함께 공존하자, 라일리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우리 사회에도 호환되는 스토리다. 슬픔이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하다. 참사를 잊지 않고, 희생자를 추모할 줄 아는 사회만이 참사의 반복을 줄인다.
911메모리얼파크의 연못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눈물을 뜻한다. 눈물을 흘리고 흘려도 채워지지 않은 연못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온다. 2개의 연못 옆에는 ‘911메모리얼뮤지엄’이 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파편들을 모아둔 뮤지엄이다. 놀랍게도, 내가 갔던 모든 미술관과 전시회, 명소들을 합해서 줄이 가장 길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30분을 기다렸지만, 입장대기줄이 줄지 않았다. 911테러는 미국 사람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