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다면 일단 즐거운 사이
'상냥한 마녀들' 예찬
우리는 정확히 한 달 후 여의도에서 다 같이 다시 모였다. 뒤풀이 겸 송년회 겸 명분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번에 김장 탓에 참석하지 못한 하남 언니도 참석했다. 엊그제 모였었던 것 같은데 그새 한 달이 지났나 보다. 30대까지만 해도 흐르지 않던 나의 시간은 40대에 접어들더니 두 배 이상 빨라진 느낌이 든다. 30대였던 내가 갑자기 40대가 된 것 같은, 중간의 시간들이 어찌 흘렀는지 그냥 물웅덩이를 건너듯이 폴짝하고선 시간을 건너뛰어버린 것은 아닌지. 내가 갈수록 빨리 흐르는 시간에 조바심을 낼수록 더 시간은 빨리 흐른다.
메뉴는 주꾸미 볶음에 보쌈 수육에 계란말이 등등 소주 안주에 뭐가 안 어울릴까. 우리들은 작은 식당의 다락방에 모였다. 그곳은 우리만의 공간이었고 독립된 장소여서 마음껏 웃고 떠들 수가 있었다. 왕언니의 단골집인 모양인지 여사장님의 배려가 눈에 띄었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다시 우리와 함께 한 자리에서 김 과장님은 참으로 편해 보였고 편하게 웃으시고 편하게 얘기하셨다. 그런 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얼굴에 다 보이기 마련이다. SNS 메신저에서, 회사 메신저에서 아니면 전화로 수 없이 대화를 해도 멤버의 언니들과 나는 만나면 또 만나는 대로 할 얘기가 화수분처럼 셈 솟나 보다. 아니면 만나서 하려고 할 얘기들은 따로 숨겨놓는 건가. 목소리가 지꾸 커지는 우리들,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니 역시 우린 독립된 공간이 필요해.(라고 왕언니가 그랬었지.)
우리들은 그날 아주 심각하거나 진지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다 아는 뻔한 얘기, 우리끼리라면 다 통하는 회사 얘기, 우리가 아닌 남들에게는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우리끼리라서 남의 눈치 안 봐도 되는 얘기,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언니들이 다 받아주는 그런 얘기, 그래서 더욱 재미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날 나는 웃고 떠드는 언니들에게 발견한 것이 있다. 서로들 주고받고 웃으면서 자지러지는 모습을 보고 알 게 된 것이 있다. 세 분을 앞에 두고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서로의 뒷담화를 앞에서 하는 사이,
서로에 대한 평에 가감이 없어도 상처받지 않는 사이,
응석을 부려도 되는 사이,
안 받아줘도 상처받지 않는 사이,
솔직한 얘기로 지적을 해줘도 상처받지 않는 사이,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깃거리가 샘솟는 사이,
거리낌 없이 부탁을 하는 사이,
부담을 받아도 부담을 주어도 행복한 사이,
웃다가 눈가에 주름을 만들더라도 마음은 오년이 젊어지는 사이,
주름이 생길까 봐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나누는 사이,
부탁을 해도 신세 지고도 덜 미안한 사이,
반찬도 나눠주고 생강청도 나누는 사이,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도 자주 하는 사이
어두운 세상 헤쳐나가는 비밀 결사대 같은 사이,
만나지 못하면 마음으로 든든한 사이,
만난다면 일단 즐거운 사이.
예쁜 우정 함께 지나온 시간보다 더 오래도록 함께 하시길.
상냥한 마녀 비밀결사대 만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 인생, 만나기만 해도 즐거운 우리 사이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