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람들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 밖을 서성이는데 낯선 여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팸전화라고 하긴엔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내 이름 석자를 정확히 대면서 나 아니냐고 물어왔다. 보이스 피싱은 오랜만이라 약간 짜증도 나고 얼른 끊어버려야지 하고 생각을 했다.
전화의 내용은 황당하게도 나를 찾는 것이 아니었고 나의 이모, 정확하게 셋째 이모를 찾는 전화였다. 한마디로 그분은 이모의 친구였고 내게 오랫동안 소식이 궁금했던 친구를 찾는 이의 전화였다. 그러니까 이모를 왜 나한테 찾느냐고!
사연인즉슨, 이분은 수년간 연락처를 잃어버린 오래된 친구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모의 연락처를 알만한 사람들의 연락처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이사를 하면서 나의 청첩장을, 그러니까 내가 결혼할 때 돌렸던 청첩장을 보게 되었단다. 그 청첩장이 왜 거기까지 가 있었을까. 이 여성분이 나의 엄마와 아빠와 인연이 있었던 건지.(나중에 부모님은 잘 계시냐고 물어봐서 나의 부모님과 아시는 사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엄마에게 여쭈어보니 엄마도 나의 청첩장이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의 청첩장에는 나의 연락처도 적혀있었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라 번호도 당연히 가운데가 세 자리인 옛날 번호였다. 다행인지 우연인지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나는 가운데 세 자리에서 네 자리로 바뀐 것만 뻬고는 10년 전과 동일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이모 친구분은 가운데 세 자리 번호가 보통 네 자리로 늘어나면서 3*** 이런 식으로 앞에 3처럼 한자리만 늘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래 3이 보통 많으니까 3부터 시작하는 거야' 하고 마음먹고는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내 번호는 옛 번호에서 가운데 3자만 늘어난 채 그대로여서 작업을 시작과 동시에 첫 판에 내가 딱 전화를 받았던 거였다. 아! 순간 이렇게도 사람이 찾아지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약간의 황당한 마음을 감추고 일단 이모에게 연락해서 물어보겠노라고 우선 상대방의 성함만 받고 전화를 끊었다.(혹시라도 이모가 원치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분 아시냐고, 이모랑 통화하고 싶어 하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결과는?
이모는 오랜 친구라면서 반가워하셨고 알려줘도 된다고 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 알려드렸다. 나중에 물어보니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분이라고 하셨다. 이모는 광주 사시는데(전라도) 이 친구분은 인천에 사신다고 했었다. 두 분은 얼마 만에 통화를 하시는 걸까. 무슨 얘기들을 나누셨을까 지금도 가끔 궁금해진다.
궁금한 친구가 있다면, 연락하고 싶은 지인이 있다면 바로 찾아보는 게 맞다. 그 작은 수고로움이 귀찮아져서 너무 늦으면 보고 싶어도 때를 놓치게 된다.
광주에서 사는 동생이 엄마 집에 갔다가 오랜만에 앨범을 정리를 했고 그 안에서 발견된 나의 중학교 시절 사진들을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 오래된 사진 속에는 안경을 쓰고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웃고 있는 중학교 1학년의 내가 있었다. 춘추 교복을 보니 봄인 것 같았다. 그리고 1학년 담임 선생님과 가을 소풍 때 나란히 잔디밭에 앉아 찍은 사진도 있었다. 내게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조금은 특별한 분이셨다. 국어와 한문 수업을 책임지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이면 그렇게 이야기를 잘해 주셨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를 맨 처음 만난 것도, 황순원의 소나기를 만난 것도 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이야기 솜씨 때문이다. 칠판에 분필만으로도 주인공들은 어찌 그리 잘 그리셨는지.
감수성 충만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무엇인가가 가끔 서럽고 불만도 많은 여학생이었다. 그즈음 코피를 자주 흘렸는데 어느 여름날 학교에서 점심시간 수돗가에서 코피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담임 선생님의 옷에 코피를 한 바가지나 쏟고 기절한 후 병원에 실려갔다. 그 날따라 선생님은 하얀 모시옷을 입고 오셨었는데! 병원에서도 또 한 번의 기절 후에 코 안쪽에 혈관이 터져서 그렇게도 코피를 자주 흘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다가 가끔 선생님이 생각났고 스승님 찾기를 했었지만 결국 연락은 하지 못했었다. 그 후로도 가끔 다시 찾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시간이 늦어져버렸다. 나를 기억하고 계실지 확신할 수도 없었고 시간이 너무 흘러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감이 안 왔다.
이제는 너무 늦어져서 정년을 하고도 한참은 지난 시기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내가 흘린 코피로 범벅이 되었던 담임 선생님의 흰모시옷을 잊을 수가 없다. 죄송했고 감사한 마음도 가득한데 어쩌면 내가 그리워한 것은 그때 그 시절, 그 여름의 공기와 그 시절 속의 선생님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를 놓친 벌로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살아가면서 늘 선생님을 궁금해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은 그런 것이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르는 것. 기차역에 서 있을 때도 출퇴근 길에 멍하게 버스 창에 기대어 있을 때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고 고무장갑 사이로 쏟아지는 수돗물 사이로도 슬며시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움은 우리의 기억을 따뜻하게 가꾸어주는 근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