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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02. 2019

박물관에서 훔친 차

2018년 동산문학 신인상

박물관에서 훔친 차           


 식당에 딸린 안방에서 티비를 보며 과자를 먹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나는 고개를 빼꼼 들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 계산을 치르고 밖에 나섰고, 엄마는 배웅을 하러 나간 순간이었다. 그런데 식당에 온 손님의 차에 낙서가 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당황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황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차의 보닛에는 박물관에서 훔친 차라고 낙서가 되어 있었다. 뾰족한 것으로 새겨서 정성스럽게도 그어 놓았다. 먹고 있던 과자를 입에 쏙 집어넣었는데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들이 낙서한 것 같은 데요.”

‘우리 애는 방에만 있었을 텐데……’ 엄마가 방안에 있는 나를 불러냈다.

“저는 방안에서 티브이 보고 있었어요!”


 태연하게 도리질을 해보지만 마른침이 넘어간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여덟 살은 추궁당하면 가슴이 뛰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괜히 손톱을 뜯적뜯적하며 딴청을 부려본다. ‘그럼 동네 아이들 짓일까요?’ 손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등산로 초입의 식당 근처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은 살지 않았다. 게다가 쌩쌩 지나다니는 차와 등산객들 말고는 다니는 사람도 없는 한적한 곳이다. 식사 중인 손님 중에서도 아이들과 동행한 사람은 없었다. 다시 의심의 눈초리는 나에게로 향했다. 끝까지 도리질 치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간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도 옹송그리던 입술을 보고 이미 범인을 확신 했을 것이다.     


 당시 매달 식당으로 날아오던 뚝배기라는 요식업 잡지가 있었다. 새로 나온 주방기기나 요식업의 동향에 대한 잡지였다. 컬러풀한 씽크대와 튀김기는 나에게 별 흥미를 주지 못했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단편 소설과 만화 코너였다. 산속의 조그마한 산장에는 놀만한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 달 소설의 제목이 바로 ‘박물관에서 훔친 차’였다. 동네 아이들이 아버지의 차에 낙서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후반이 정확이 어떠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야기가 나에게 엄청난 감명을 준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가장 좋아 보이는 차를 골랐다. 조약돌을 하나 주워 ‘박물관에서 훔친 차’라고 삐뚤빼뚤 써 놓았다. 그 차가 우리 집 손님의 차라는 것도, 생각 없이 저지른 장난에 부모님이 얼마나 곤란할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막 한글을 뗀 미운 8살이었다. 범인이 나라는 것이 밝혀지자 엄마의 얼굴이 푸른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손님 아저씨가 나를 혼내려는 엄마를 말렸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죠.”

 오히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나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눈물 콧물에 젖은 손으로 분홍색 지폐를 덥석 받았고 울음을 딱 그쳤다. 너그러운 손님 덕분에 더 이상 혼나지는 않았다. 엄마는 수리비를 물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님은 애들이 모르고 한 일이라며 거듭 사양했다. 수리비는 엄마의 말에 따르면 10만 원 정도로 그때 당시에는 꽤 큰돈이라고 했다. 게다가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차는 새로 산지 얼마 안 되는 비싼 차였다고 했다. 매를 맞지 않은 것이 희한할 정도의 대형 사건이었다.      


 이후에 그 손님은 우리 식당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까지 이따금 식사를 하러 식당에 방문했다. 올 때마다 내 소식을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그 아이가 그렇게 컸냐고 흐뭇해 하셨다고 했다. 나는 자라느라 바빠서 식당에 온 그 손님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엄마가 식당을 그만둔 지금은 그 손님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그렇게도 세상 물정 모르고 천방지축이던 꼬마가 이제는 다 자라서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생각난 김에 우연히 박물관에서 훔친 차를 검색해보니 동명의 소설이 책으로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야기가 애초에 동화로 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손님은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이제라도 다시 만나 사과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의 따뜻함을 믿고 살고 있다고 말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흉악한 사건사고가 많이 들려온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 때 그분이 나에게 건넨 천 원이 내 마음 속에 하염없이 떠다닌다. 만약 내가 그 손님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그처럼 관대할 수 있었을까. 가슴속 한편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소중하게 간직해 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지 모른다. 그때, 나 역시 따뜻하게 데워놓은 천 원을 두 손에 꼭 쥐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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