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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Oct 08. 2020

[육아에세이] 내 등 좀 밟아줬으면.

거기 누구 없소.

"허리 좀 밟아봐라"

초등학생 때였을까.

엎드려 누운 채로 아버지는 이따금씩  다리며 허리를 밟아보라고 하셨다. 발바닥으로 살금살금 주무르듯 밟아드려 보지만 이내 아버지는 등 위로 아주 올라가서 밟으라고 하신다.


아버지의 등 위로 올라서면 기우뚱 짜우뚱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벽을 짚고 아버지의 등을 자근자근 밟아대면 그제야 시원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위에 올라선 마음은 행여 허리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지금 다 커서 생각해봐도 등과 허리에 올라가 무게를 실어 밟는 건 위험한 것 같다.


새벽 두 시 아기에게 마지막 수유를 하는데 온몸이 쑤시고 결렸다. 누군가 내 등에 올라타서 밟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 것이다. 토목 일이며 목수 일이며 일 욕심 많기로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아버지.

아버지도 두들겨 맞은 듯 뻐근하고 쑤셔서 그렇게도 밟아보라고 하셨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어린 손으로 주물러서는 기별도 가지 않으니 발로 밟아보라고 하신 것이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일은 항상 고단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욱 뻐근하다. 모유수유는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에 파스라도 붙여볼까 싶지만 등에 혼자서 파스 붙일 재주도 기운도 없이 지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았는데도 하루 종일 아기를 안았더니 결국 또 이 모양이다.


아버지의 고단했던 등이 떠오른다. 어린 마음에 칭찬을 들어보겠다고 열심히 밟아드리기도 했지만, 가끔은 빨리 "이제 됐다 그만하거라"라는 말이 나오기를 내심 기다리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등 위로 올라가 밟아드리는 일이 없어졌다. 두 손으로 아버지 어깨며 등을 눌러 줄만큼 자랐지만 철없는 사춘기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한평생 쉬지 않고 일한 것에 대한 값을 치르는 듯하다. 쉬고 싶지 않아도 움직일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와 어딘가를 주물러드리기라도 하면 시원하다는 말은커녕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시기 일쑤이다. 마비가 오고 근육이 다 빠져버린 팔다리에는 아무리 작은 자극이라도 고통스러울 뿐이다.


 간이식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완전히 일어날수 없게 되버린 그 해 까지도 아버지는 소처럼 일했다. 엄마의 식당에서 닭을 잡았고, 축사에서 가축을 돌보셨고, 밭일을 하셨다. 이장이라서 동네일도 보셔야했다. 간이식 이후 일을 줄인 것이 그 정도였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조금만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보내셨더라면 이름도 어려운 희귀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기를 낳고 고단한 밤이면 젊은 날의 부모님이  떠오른다.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오늘 떠올랐던 옛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아마 또 아기처럼 펑펑 우실 것이다.

고단한 이밤 한 팔로 아기를 안고 간단히나마 적어보는 이유이다.


그나저나 누구라도 좋으니 누가와서 내 등 좀 밟아줬으면  좋겠다.

잘근잘근 작신작신 신명 나게 말이다.



내일 쓰러질 것을 알아도 아버지는 오늘의 일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처럼은 안 살아야지 싶으면서도 이내 아기를 다시 안아드는건 나도 어쩔수 없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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