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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Oct 14. 2020

[육아에세이]엄마, 울지 마세요.

아기가 위험해져요.


"엄마, 울지 마세요. 엄마가 울면 아기가 위험해져요."


 이미 자궁문이 8센티가 열렸다며 내진을 하던 간호사는 냉정하게 말했다. 집에서 16시간의 진통 끝에 분만실에 도착하자마자 왠지 모를 안도감과 두려움에 나오던 눈물이 쏟아지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간호사의 칼 같은 명령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엄마가 울어서 콧물이 나면 뱃속의 아기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기가 위험해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신기하게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쏙 들어갔던 눈물은 출산 직후 아기의 고환이 하나 내려오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모가 울면 약해진 시신경이 손상되니 울지 말란다. 엄마가 되니 마음껏 울지도 못한다. 임신 기간 동안 뭘 잘못 했는지 혹은 먹었는지 후회와 자책에 몸이 떨렸다. 조리원을 나와 집에 와서도 기저귀를 갈 거나 목욕을 시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한숨 쉬기를 여러 번. 두 달이 지난 오늘 드디어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간다.    

 

 아침 일찍부터 아기를 데리고 광주 기독병원으로 출발했다. 날씨는 불길하게도 맑고 높았고 하얀 구름도 두둥실 떠있었다. 칙칙한 병원이 아니라 나들이를 가야 할 날씨였다. 무슨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절대 진료실에서 꼴사납게 울지 말아야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카시트에 앉아 방싯방싯 웃고 있는 모습이 천진난만해서 더욱 심란했다.


 잠복고환은 고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다. 덜 내려오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안 내려오거나 내려올 고환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인조 고환을 넣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고환이 하나 없다고 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살아가는 데에는 지장이 많을 것이다.

 하필이면 출근 시간이라 가는 길은 유난히도 막혔고, 열악한 병원 주차장은 무시무시하게 혼잡했다. 접수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아침 일찍인데도 사람도 너무 많고, 접수 검사 진료로 이어지는 동선 역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아기는 유모차와 아기띠도 없이도 두세 시간의 진료와 검사시간을 얌전히 버텨주었다.


 의사는 간단하지만 단호하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고환이 안에 있긴 있었구나. 잠시간 안도의 마음이 들었지만 수술이라는 거룩한 단어 앞에서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다려도 자연적으로 내려올 위치는 아니라고 했다. 4개월 이후에 다시 오라는 예약증 하나 달랑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여전히 푸른 하늘에 눈이 시렸다. 세상에는 더 아픈 아기들도 많고 이 정도는 정말 큰 병도 아니지만 갓 6개월 된 아기 몸에 전신 마취를 하고 칼을 대야 하다니. 곤하게 잠이든 아기 얼굴을 보는데 그제야 눈물이 났다.  

   

  아기 침 닦아주려고 챙겨 온 가제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문득 분만실에서 들었던 간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울지 마세요. 엄마가 울면 아기가 위험해져요." 다분히 의학적인 주문(注文, order)이지만 어쩐지 평생 마법의 주문(呪文,spell)처럼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내 눈물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이제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아기는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조차 엄마의 감정에 공명한다. 앞으로 아기를 키우며 얼마나 더 눈물 날 일이 많을까. 아기는 엄마의 눈물이 아니라 웃음을 먹고 자라야 할 텐데. 역시 엄마가 되는 일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엄마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초보 엄마는 오늘도 주문을 외우며 눈물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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