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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Nov 30. 2021

[육아에세이] 동네 하나

아이 하나 키우는데 필요한 것은?

 

 15개월이 된 아기가 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돌발진으로 일주일 간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목소리에서는 쉰 소리가 났고 기침을 할 때는 컹컹 소리가 났다. 덜컥 겁이 나서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지난 입원 때 인두염과는 다른 후두염 소견에 입원절차를 밟았다.(결국 파라바이러스였다.) 아기는 열이 높아서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 혈관이 잡히지 않았다. 베테랑 간호사들 세 분이 다섯 번이나 실패하고 간신히 성공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꼭 붙들고 있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입원하니 당장 아기 밥이 문제였다. 남편이 아기를 보고 내가 집으로 가서 입원 짐을 싸고 아기 밥을 챙겨오기로 했다. 집에 가던 중에 오늘 마침 동네 도라지를 받으려던 참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기가 아팠다는 말에 동네의 카페 사장님이 도라지를 주신다고 했다. 서둘러 가 보니  하얗게 잘 다듬어서 말린 도라지를 봉지에 담아 주셨다. 씁쓸한 도라지는 안 먹을 수도 있다며 메이플 시럽까지 조금 덜어주셨다. 아기가 너무 자주 아프니 마음은 급해서 염치도 없이 그냥 받아왔다.     

 

 정신없이 장까지 보고 집에 왔는데 웬걸! 도라지와 함께 끓일 배를 깜빡했다. 다시 마트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방금 다녀왔던 동네의 마트에 전화를 걸어 배를 주문했다. 마트에서는 배달 주문금액에 못 미쳤지만 흔쾌히 배 다섯 개를 집으로 가져다 주셨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도라지와 배를 끓이고, 아기 밥을 준비하고, 입원 짐을 싸는데 벌써 시간이 너무 지체 되어버렸다.      

 

 병원으로 출발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대에 꽉 잡혀 버린 것이다. 병원 기다리고 있을 아이 생각에 입속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의외로 아기는 간단히 요기를 한 상태였다. 건너편 병실에 입원한 아기의 엄마에게서 과자와 귤을 얻었다고 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을 텐데. 처음 만 난 아기에게 선뜻 먹을 것을 내어준 마음이 참 고마웠다. 아기에게 서둘러 밥을 먹이고, 끓여 온 도라지를 먹이고 나서야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그날 밤, 해열제를 맞고 잠이 든 아기 옆에 누워서야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떠올랐다. 손수 다듬어서 말린 도라지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 아미에 카페 사장님, 배 다섯 개라도 마다하지 않고 보내 준 푸르미 마트, 아기에게 귤과 과자를 나누어 준 건너편 병실의 아기 엄마. 작은 호의들이 모여 좁은 병실의 천장 위에 흐르고 있었다.      

 

 ‘아기 하나를 키우려면 동네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건너갈 때 기다려 주는 운전자들, 길에서 만나면 아기에게 웃어주는 어르신들, 언제나 아기에게 활기차게 인사해 주시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미화여사님들. 아기가 먹을 고기라며 더 정성껏 다져주는 정육점 사장님까지도. 아기를 낳지 않았더라면 미처 몰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참 좋은 동네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동네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한 번도 의식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사는 것 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다 보니 그렇게 사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간간히 보이는 ‘노키존’이나 ‘맘충’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싸르르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기의 존재를 기꺼워하고 반가워 해준다. 나도, 그리고 자라날 우리 아기도 언젠가 누군가의 좋은 동네 사람이기를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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