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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Nov 30. 2021

[육아에세이]여행

어딘가로 떠나야만 여행인가요


 남편이 돌아왔다. 무려 8개월 만이다. 구정도 쇠기 전에 승선한 남편은  찬서리가 내리는 10월 초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석탄을 싣고 다니는 상선에서 일하는 남편은 항해사다.


돌쟁이 아기는 잠깐 어색해하더니 금방 아빠 품에 달려가 안겼다. 아이를 안아 든 남편은 ‘사진보다 더 작다’며 신기해했다. 나야말로 남편이 낯설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고군분투했던 지난 몇 개월간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막상 남편이 집에 오니 반가움과 함께 서먹함은 물론 서운함까지도 몰려온다.

      

 열이 나는 아기를 일주일간 밤새며 돌아왔던 일이며, 보채는 아기를 달래며 울면서 방송대 과제를 하던 일이며, 독박 육아에 결국 아기에게 화를 버럭 내고 자책하던 일까지. 혼자서 고생이 많았다고 남편은 하선하기 전부터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기분전환도 하고 첫 가족여행의 추억도 만들자는 것이다. 아기와 멀리 갈 수 없어서 여행지는 남해로 결정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리조트는 프런트와 식당, 객실들이 모두 따로 떨어진 건물에 있었다. 리조트를 잠깐 둘러보려면 어쩔 수 없이 계속 밖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햇빛이 사라지고 바람이 거세져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뛰어다닌 아기는 저녁 무렵 결국 열이 나기 시작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최대한 서둘러 일정을 잡았는데도 아기에게는 남해의 바닷바람이 너무나 차가웠나 보다.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챙겨 온 해열제를 먹였지만 그날 밤 아기의 열은 40도까지 올랐다. 밤새 아기를 지켜보다 새벽 6시에 체크아웃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왔는데도 축축 처지기 시작했다. 밤이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났다. 부랴부랴 입원할 병원을 알아보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아동병원의 입원실이 모두 꽉 찼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열이 있으면 일반병원에도 입원 어려운 시국이라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겨우 병실이 있는 아동병원을 찾았다. 아직 남해 여행을 다녀와서 풀지도 못한 여행 짐을 그대로 들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진료를 받고, 입원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아기의 몸은 너무 뜨거웠고 병원의 복도는 차디찼다.


그래도 이제 입원할 거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어 눈물이 쏟아졌다. 아기는 입원해서도 4일 간 고열이 내리지 않았다. 일주일 간 입원을 하고 퇴원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일주일 간 입원해야 했다. 아기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어른들이 위로해 주셨다. 남편이 8개월 만에 돌아왔을 때 잠시 느낀 서먹함도 아픈 아기를 보느라 부대끼는 사이 사라진 지 오래다.      


 두 번에 걸친 입원과 퇴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날, 그제야 남해에서 시작한 긴 여행이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기를 보니 그 어떤 고급 리조트보다 아기가 건강한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우리 집이 최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해에서 시작해서 병원으로 끝난 이 여행이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강한 엄마이자 아빠인지 알게 되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불편한 좁은 병실에서 힘을 합쳐 아픈 아기를 돌보았다. 나중에는 병원이나 리조트나, 밥하고 청소할 필요가 없는 건 비슷하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리조트에서 아기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첫 가족여행을 그저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아픈 아기와 함께 울고 웃으며 더 많은 것을 느꼈고, 언젠가는 이 경험조차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당분간 여행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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