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범
도서관은 살아있다 2
도서관은 살아있다. 22시에 철야 열람실을 남겨두고 개가식 서가 몽땅 폐문하다. 게이트 앞 셔터를 내리며 원하지 않는 시간을 싹둑 자르고 공간을 폐절한다. 이른 첫새벽부터 미화 노동자의 땀으로 먼지 뒤집어쓴 카펫이며 얼룩진 화장실 발자국 땟국물이 흥건한 아주머니의 땀으로 반들반들해질 즈음 출입문의 빛을 따라 20대 청춘이 씩씩하게 하나둘 두툼한 미래를 지고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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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출정하는 병사의 눈빛이 그리 맑게 무거웠는지. 덜떨어진 눈꺼풀을 비비며 도서관 게이트에 모바일 학생증을 대면 게이트가 열리며 책숲으로 인적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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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뒤척이던 서가의 100만 권 책 무덤들, 책갈피로 재빠르게 문자를 덮고 지그시 눈을 감고 그 누가 나의 몸을 더듬거릴지 무상무념으로 기다린다.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십 년이 지나도 아니 백 세가 되어도 낡아가는 책 무덤이 먼지를 수북이 덮고 있어도 글자 하나하나 제 몸 파먹고 사라져도 인적은 온데간데없는 경우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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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나저제나 어둠과 빛으로 삭아지고 벌렁벌렁하던 초초함과 그리움도 마를 때 즈음 낯선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라옷매무새 가다듬으니 창백한 손가락 사이로 눈망울 빼꼼히 기울다 헐은 나의 책 표지에 인적이 스미는 사이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멍하니 청춘의 눈과 가슴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의 가슴과 혼에 똬리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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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지기 서가의 두툼한 철학책은 부러운 듯 눈망울만 껌벅이며 독야청청 오지도 않는 청춘의 부복한 손끝을 무턱대고기다리며 옹알옹알 먼지 쌓인 적층의 세월로 스스로 침참해 미라가 되려는 찰라 한낮이 부질없이 꺼지고 인적이 사라진 도서관 서가에는 또 한밤의 난장, 사람이라고는 하나뿐인 나를 붙들고 난리 블루스가 밤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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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문 닫은 24시 이후가 가장 볼만하다. 어둠으로 폐쇄 된 서거의 책 속에 유폐된 지은이의 영혼이 살아 공간을 퍼렇게 물들인다. 뚜벅뚜벅 순찰하는 구둣발 소리에 잠들지 못한 책의 영혼이 하나둘 쉴 사이 없이 달려들어 말을 거는 데 한글로들리는가 싶으면 한문이 요란법석 떨들석하다가 일본 말 사뿐사뿐 곡예 하다 러시아의 거친 음성과 대서양을 건너온 독일, 프랑스, 스웨덴 말들이 뒤죽박죽 말을 걸다 무심결에 옆 서가로 지나칠라손 치면 등짝에 올라타 뒤통수 머리카락 잡아당기고 귓불을 비틀고 콧구멍을 파고들어 심장을 후려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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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의 억겹이 날마다 손끝에서 놀아달라고 입술을 더듬다 심장에 눌러앉아 놀아달라 애걸복걸하는 데 지치고 안쓰러워큰 맘 먹고 서거의 책 속으로 훅 입술을 밀어 넣고 과거의 시간으로 무전여행을 떠나는 일상이라. 도서관은서거 사이 책들이 인적이 사라진 오밤중에 밤마다 어둠을 쓰고 가면 놀이를 한다. 오늘은 어떤 지은이가화려한 문장을 걸치고 야한 책갈피 뒤에 숨어 놀아달라 생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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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 한밤중에 적요를 뚫고 문자가 살아나다
억겹의 세월을 분지르며 족쇄에 갇힌 시공을 탈주해
그제나저제나 이름 모를 천연을 기다리며
억만년 눈감은 인의 역사 서글피 몸서리치네
2017.4.3.
조성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