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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ug 16. 2016

권력의 자리가 조또 아닌 것으로...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위대한 놈들은 거의 언제나 나쁜 놈들이다." (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Great men are almost always bad men.) 19세기 영국의 액튼 경(Sir John Dalberg-Acton, 8th Baronet)이 한 말이다.

그래서, 모든 공직에 부여된 권력을 죄다 빼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부정부패는 계속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점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조또 아닌 것으로 보지 못한다는 우리의 인식 말이다. 온갖 의전과 아첨으로 권력의 자리에 앉은 자를 보위한다. 털끝 하나라도 손상될까, 염려한다. 권좌에 앉은 자는 그런 의전과 아첨에 걸맞은 위세를 부린다. 이 계급적 질서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액튼 경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우리의 경험만으로도 분명하다. 그래서 공적 지위에 올라간 사람에게서 권력을 빼버려야 한다. 외교적 의전행사 이외의 모든 의전도 없애야 한다. 아무리 권력이 많아 보여도 사적으로 의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베를린 시내의 Am Kupfergraben 7번지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연방 환경부 장관과 여성가족부 장관 시절에는 집무실까지 슈프레(Spree) 강변을 걸어서 출근했다. 대략 30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총리가 되고 나서, 바쁜 일정 때문에 슈프레 강변을 산책하는 것은 못하고 차로 출근하지만, 그 누구도 의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총리가 사는 아파트라서 경찰이 늘 지키고 있지만, 시민들의 접근을 막지는 않는다.


출근하는 메르켈 총리를 위해 근무 중인 경찰관도 팔짱을 끼고 이웃집 아줌마를 쳐다보는 듯한 수준이다... 경찰이 출근하는 총리에게 왜 굽신거리는 의전을 해야 하는가? 총리를 조또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경찰관에게 총리는 그저 총리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일 뿐이다.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독일 총리도 퇴근길에 마트에 들려 남편(훔볼트 대학교의 요아힘 자우어 교수)과 함께 할 저녁식사 꺼리를 사들고 간다. 그것은 총리의 사생활일 뿐이다. 그러다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찍히기도 한다. 그러면 슬그머니 경호원이 파파라치에게 다가와 총리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한다. 경호원이 시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윽박지르지도 않지만, 총리에게 굽신거리지도 않는다.


오른쪽 Am Kupfergraben 6번지의 임대주택에서 왼쪽 끄트머리의 연방총리집무실(Bundeskanzleramt)까지 차로는 7분, 걸으면 24분 걸린다.
이 건물이 Am Kupfergraben 6번지 임대주택이다. 이 건물의 4층(우리식으로 말하면 5층)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산다.
왼쪽 4층에 남편의 이름 Prof. Sauer라는 문패가 쓰여 있다. 총리의 집이라고 해서 문패의 색깔이 다르지 않고 크기도 더 크지 않다.
아침 출근길에 남편과 함께 아파트를 나오고 있다. 경호를 맡은 경찰은 팔짱을 끼고 그저 쳐다볼 뿐이다.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 하면 되는 것이지 굽신거리는 의전은 필요없다.


메르켈의 권위


독일인들이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1954~)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총리가 직접 시장을 보기 때문에? 아니면 굽신거리는 의전을 받지 않고 서민 코스프레를 하기 때문에?


독일인들의 심성에는 총리든 장관이든 서민이든 누구든 각자 자신의 역할을 중시하며 어떠한 계급적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되기 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거나 통제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화와 토론을 거친 합의가 있을 뿐이다.


런던에 머물다가 이번 9박 10일간(2016. 08.03~12)의 독일 여행에서 런더너들과 베를리너들의 차이점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인이 영국인에 비해 무뚝뚝하고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서로 빚진 게 없는데 굽신거릴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불친절할 필요도 없다. 각자 자신의 역할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다. 독일인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역할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공직을 맡은 사람은 역할, 즉 전문용어로는 성과책임(accountability, Verantwortung)이 아주 분명하다.


독일 연방총리는 다른 연방장관들에게 명령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방정부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인 지그마 가브리엘(Sigmar Gabriel, 1959~)은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의 대표다. 선거 때가 되면 서로 득표를 놓고 경쟁하는 경쟁자인 셈이다. 그런데 같은 정부를 구성해서 한 사람은 총리로, 다른 한 사람은 부총리로 일을 하고 있으니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일하는가? 서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하여 결정한다. 정당이 다르면 정치철학에서부터 정강정책이나 강령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화와 토론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윽박지르는 사람을 독일인들이 존경하겠는가? 존경은 겉으로 드러난 의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권위라고 한다.


메르켈의 권위는 연방총리로서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박근혜의 치명적인 권력


메르켈과 달리 박근혜의 행태를 비교해보자. 제도적으로 주어진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사정기관을 통해 그들을 통제한다.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벌벌 떤다. 한 자리 얻어먹겠다는 사람들은 아첨으로 접근한다. 박근혜 주변에 있는 인사들을 보라. 박근혜에게 아첨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그 앞에서 굽신거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과연 해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권력의 힘과 맛이 떨어지면 그들은 단물만 빨아먹고 그 곁을 떠난다.


이명박 시절 그에게 빌붙어 먹던 놈들이 지금은 다 어딜 갔는가? 전 국토를 이토록 망쳐놓은 자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자원외교니 뭐니 떠들면서 재정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안겨준 놈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가?


권력을 활용하면 할수록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이 판국에 누가 이명박을 존경하겠는가? 존경을 받을수록 권위는 올라간다. 박근혜를 존경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권위가 없는 것이다. 이 판국에 누가 박근혜를 온전한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는가? 참담한 심정이다.


제도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더라도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입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자리일 뿐이다.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며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찌할 것인가?


공적 지위에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심에 의해 개인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합의되지 않은 것은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합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관습이 생겨나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지금처럼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한 사람이 온갖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권력을 쥔 사람이 누군가에게 그의 양심이나 의지에 반하는 명령을 내릴 때,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측근들의 행태를 보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제 정치구조다.


독일 헌법(기초법) 제1조 제1항: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다. 베를린 연방의원 회관의 유리담에 담긴 헌법 조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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