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석 Mar 15. 2016

노무현, 박근혜, 김종인을 생각하며

친노(親盧)와 친박(親朴), 그리고 패권(覇權)에 대하여

노무현, 박근혜, 김종인을 생각하며

친노(親盧)와 친박(親朴), 그리고 패권(覇權)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노 또는 친박이라는 용어는 아주 애매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려면, 그런 용어의 개념부터 명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과 박정희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 친박이나 친노라는 말은, 박정희와 노무현의 정치사상과 철학,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실현하려는 정치인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친박’의 화신으로서 박정희의 유지를 실현하려고 한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대통령까지 되었으니까. 지금은 아버지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제왕적인 명령과 통제에 의해 통치를 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공약했던 것들을 하나 둘 파기하면서, 제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다. 정치, 경제, 외교, 복지 등 모든 면에서는 크게 후퇴했다. 특히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어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듯이 시민 개개인의 삶은 크게 위축되었다. 심지어 친일매국행위를 미화하고 일본군 성노예(일명 ‘위안부’)로 끌려갔던 사건을 일본 정부와 부실하게 합의해줌으로써 적당히 덮어버렸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친박’이 되고 싶어 한다. 지금 눈앞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여서 ‘친박 패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패권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권력을 뜻한다. 요즘은 어떤 분야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 권력 또는 자기 세력을 넓히려는 권력을 말하기도 한다. 정치란 본래 권력을 잡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패권을 가지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그 권력의 원천이 강제력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 권력의 원천이 무엇이냐에 따라 권력(패권)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의 정치과정을 보면 박근혜와 친박의 패권은 정보기관과 사정기관의 강제력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20대 총선이 다가왔다. 새누리당의 공천결과를 보면 박근혜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건드린 사람은  거의 다 퇴출되었다. 민주사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강제력을 동원하려면 반드시 합리적인 기준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유도 없고 무조건이다. 나쁜 패권의 전형이다.    


그러면 지금 노무현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도대체 ‘친노’는 무엇인가? 노무현의 정치사상과 철학,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일군의 정치인 그룹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이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는 ‘친노’와 ‘친노 패권’이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오늘날만큼 그렇게  심하게 난무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친노와 친노 패권이 온통 나라를 말아 먹은 것처럼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친박’을 생각해보면 금방 비교가 된다. 친박을 넘어 진박으로까지 패거리를 만들었다. 박근혜가 권력의 최정점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패권이니까 오늘날 ‘친노’와는 비교할 수 없다.      


일군의 정치인들이 패권을 형성했다면, 과연 어떤 부당한 강제력에 의해 세력을 형성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제 이명박과 비교해보자. 이명박은 아직 살아있지만 노무현은 이승의 사람이 아니다. ‘친이’ 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존재감은 없다. ‘친이 패권’을 운운하는 사람도 없다. 이명박의 정치사상과 철학,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이미 소멸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사라졌는데도 왜 지금까지 끊임없이 ‘친노’와 ‘친노 패권’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가? 노무현의 정치철학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지지를 아직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노무현이 살아있을 때 그와 함께 정치를 했느냐와 상관없이 말이다. 어떤 패권이 시민적 지지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패권은 정말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은가?      


다른 정치인들도 ‘친노’보다 더 뛰어난 새로운 정치철학과 가치를 내세워서 더 많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면 또 다른 ‘친O’ 또는 ‘친O패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 좋은 정치를 향해 선한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국민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안철수와 김한길은 기본적으로 정치계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 자신의 고유한 정치철학과 가치를 명확히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친노'를 공격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자, 이제 김종인 얘기를 해보자. 김종인은 '친노 패권'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이해찬과 정청래 등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공천심사 기준으로는 컷오프할 수 없는 정청래와 이해찬 등 노무현의 정치철학을 실현하려는 일군의 정치인들을 20대 총선에서 대거 퇴출시켰다.      


김종인은 이러한 자신의 결정에 대해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대지 못했다. 그리고는 선거구도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정무적 판단이었다는 희한한 해명을 했다. 납득할 만한 어떤 설명도 없었다. 어느 재벌 회장이 아내를 내치고 첩을 맞아들인 후 사업적 판단이었다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김종인이 바로 강제력에 의한 패권을 휘두르는 나쁜 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박근혜와 무엇이 다른가?

매거진의 이전글 알파고와 이세돌,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